매일신문

[내가 읽은 책] 신의 선물을 맞이하며

그린 노마드(김인자/ 학이사/ 2022)

집 밖으로 나서기 어려울 정도로 차디찬 겨울이다. 이런 때일수록 더욱 떠나고 싶어지는 건 무슨 청개구리 심보일까. 여행하기 좋은 봄을 기다리며 노마드(유목) 앞에 풀빛을 더해 본다. 그린 노마드(green nomad), 머무는 공간 그 자체에서 정신적인 해방감을 맛보려 하는 도시의 유목민을 지칭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자연을 찾아 떠나는 대신 집 안을 자연풍으로 꾸미는 것이다.

'그린 노마드'를 제목으로 내세운 김인자 작가의 이번 여행 산문집은 제목처럼 읽는 이들의 공간에 자연을 불러온다. 20년간 오지를 포함해 100여 개국을 여행한 저자는 이전에도 '아프리카 트럭 여행', '사과나무가 있는 풍경' 등 여행서로 독자들을 만나왔다. 4권의 시집을 낸 시인이 쓴 산문은 시적이면서도 회화적이다. 사진이 없지만 저자가 여행한 곳의 공기와 풍경이 생생히 느껴지는 것은 그 때문이 아닐까.

'노마드', '티타임', '찰나', '풍경 소리' 등 4부로 나뉜 50여 편의 산문은 각국을 여행하며 본 풍경과 만난 사람들을 담백하면서도 따스한 시선으로 담았다. "그간의 노마드가 산문이 된 것은 큰 이야기를 작게 하지 않아도 되고 작은 이야기를 크게 부풀리지 않아도 되는 안도감이 있어서였"다는 말처럼 있는 그대로, 느낀 그대로를 담은 진솔한 글이다. 일상에서의 여행, 그린 노마드를 즐기는 순간과 폐사지에서의 사색, 사찰의 풍경 소리를 들으며 걷던 시간도 빠짐없이 실려 있다.

"밤새워 준비한 것을 문밖에 두고 간 신의 선물이 아침이라 했다. 내겐 매일 다른 곳에서 눈을 뜨는 여행지의 아침이 그랬다. (중략) 길을 잃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던 시간들, 불안했지만 불행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그런 시간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알았을까. 잘못 든 길이 모두 지옥은 아니라는 것."('머리말' 중에서)

저자는 매일 다른 곳에서 눈을 뜨는 여행지의 아침이 신의 선물 같았다고 말하지만, 일상적인 공간에서 맞이하는 아침도 신의 선물처럼 소중하다. 여행을 멈추고 산골에서 숲 산책자이자 프리랜서 작가로 살아가는 저자의 오늘도 그러할 것이다. 고단하지만 자유로운 노마드를 경험한 저자는 책을 펼친 이에게 마음껏 길을 잃고 불안을 즐길 수 있는 용기를 선물한다.

오늘 치 신의 선물을 무사히 맞이했다면 '그린 노마드'를 펼쳐 도시의 유목민이 되어 보길 바란다. 어디로든 훌쩍 떠나고 싶은 날, 영혼까지 흔드는 여행을 해보고 싶은 날, 든든한 길잡이가 되어 줄 책 한 권이 있다면 긴 겨울도 지루할 틈 없다.

박선아 학이사독서아카데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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