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앨프리드 마셜에게 경제학을 배우고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수제자가 된 여성 경제학자 조앤 로빈슨은 1964년 북한을 방문해 북한 사회를 돌아보고 1965년 미국의 좌파 사회 비평지 '먼슬리 리뷰'(Monthly Review)에 '1964년의 코리아: 경제 기적'(Korea, 1964: Economic Miracle)이란 글을 기고했다.
내용은 북한 찬양 일색이다. "빈곤이 없는 국가" "전후 세계의 모든 기적은 북한이 달성한 이러한 성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만일 한국인들에게 선택권을 주면 전부 북한을 고를 것" 등등. 박정희 대통령의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성공으로 남한 경제가 북한을 앞지르기 시작하면서 오류가 됐지만 로빈슨은 1983년 죽을 때까지 자기 생각이 틀렸음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로빈슨의 스승 케인스는 달랐다. 그는 1920년대 초까지만 해도 자유무역의 열렬한 옹호자였으나 대공황이 터지자 생각을 바꿨다. 1933년 예일대 학보에 기고한 '국가의 자급자족'(National Self-Sufficiency)이란 글을 통해 보호무역의 대변자가 됐다.
이를 포함해 케인스는 자신의 생각이나 이론과 배치되는 새로운 경제 현상이 나타나면 주저 없이 생각을 바꿨다. 일관성이 없다는 비판에 케인스는 이렇게 받아쳤다. "나는 사실이 바뀌면 생각을 바꿉니다. 선생님은 어떻게 합니까?"(When the facts change, I change my mind. What do you do, sir?)
25일 타계한 진보 경제학자 변형윤 서울대 명예교수는 한국의 경제개발 전략을 일관되게 반대해 왔다. '부자들의 유람로'라며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반대했고 '외자(外資) 종속'이라며 포항종합제철 설립을 반대했다. 중화학공업 육성도 반대, 수출 공업화도 반대했다. 한국·대만·홍콩·싱가포르 등 '아시아의 네 마리 호랑이'의 경제적 성취도 인정하길 거부했다. "단기적인 연구를 통해 이들의 경제개발이 성공적이라고 하는 것은 성급한 일반화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반박할 필요조차 없는 오판이다. 한국은 변 교수가 반대한 전략으로 '기적'을 이뤄냈다. 하지만 변 교수가 생전에 자기가 틀렸다고 시인하거나 생각을 바꿨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다. '학자적 양심'을 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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