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춘추칼럼] 측은지심(惻隱之心)

박재희 석천학당 원장

박재희 석천학당 원장
박재희 석천학당 원장

이 엄동설한에 그 고양이는 어디에서 긴 밤을 떨며 견디고 있을까? 문득 아침마다 밥 먹으러 오는 길고양이 걱정이 든다. 어느 날 학당 앞에서 배고픈 표정으로 웅크리고 앉아 있어, 먹이를 사서 몇 번 주었을 뿐인데, 이 추위에 얼어 죽지는 않았을까 괜한 걱정이 드는 것은 무슨 마음일까? 나와는 아무런 인연도 없는 그 고양이가 오늘 밤을 무사히 견뎌내고 아침에 먹이를 먹으러 와주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은 무엇일까?

공자는 그것을 사랑(愛)이라고 말한다. '사랑하면 그가 살기를 바란다.'(愛之欲其生·애지욕기생) '논어'의 짤막한 이 구절은 인생을 살면서 자주 가슴 떨리게 하는 구절이다. 사랑은 아끼는 마음이다. 아끼는 대상은 잘 살아 있기를 바란다. 내가 타고 다니는 차가 상처 없이 잘 보존되기를 바라는 마음 역시 그 차를 아끼기 때문이다. 내 자식, 부모형제가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 역시 아끼는 마음에서 나온다. 그런데 고양이는 나와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다. 내가 키우는 고양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나에게 다가와 꼬리를 흔들어 대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나는 지금 그 고양이가 이 추운 겨울을 잘 보내고 살아 있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나와 인과관계가 있든 없든, 인간이라면 타자의 불행에 공감 능력을 가지고 있고, 타자의 불행에 대하여 차마 참지 못하는 본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 유교의 마음 이론이다.

안 보이는 타자의 아픔에 대한 공감이 측은지심(惻隱之心)이고, 보이는 타자의 불행에 대한 슬픔이 불인지심(不忍之心)이다. '오늘 밤, 장터의 거지들은 괜찮을랑가. 소금창고 옆 문둥이는 얼어 죽지 않을랑가. 뒷산에 노루 토끼들은 굶어 죽지 않을랑가. 아! 나는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 낭송을 들으며 잠이 들곤 했었네….' 박노해 시인의 이 시를 읽으면 내 안에 잠자고 있는 측은지심과 불인지심이 느껴진다. 측은(惻隱)은 내가 모르는 이(隱)에 대한 슬픔(惻)이다. 불인(不忍)은 내 눈앞에 벌어지는 불행을 참지(忍) 못함(不)이다. 나와 관련 없는 존재의 아픔을 공감하고, 내 눈앞에 불행을 차마 두고 보지 못하는 마음이 있어 인간은 여전히 아름다운 존재다. 낮에 본 장터의 거지들의 안녕을 걱정하고, 나와 전혀 관련 없는 뒷산의 노루와 토끼의 생사를 염려하는 할머니의 그 마음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그 할머니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지는 뉴스가 하나 들려왔다. 워싱턴 DC에서 출발하여 나이아가라 폭포로 가던 한국 여행객들이 버펄로시 부근에서 폭설을 만나 타고 가던 밴이 눈 속에 고립되었다. 눈 치우는 삽을 빌리러 간 집에서 40대 부부가 한국 여행객들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여 음식을 나누고 함께 지냈다고 한다. 그 부부는 일면식도 없는 이방인을 위해서 기꺼이 자신들의 음식을 나누고, 안식처를 내주었다. 내 집 앞에서 눈에 고립되어 추위와 배고픔에 지친 사람들을 차마 두고 보지 못하는 불인지심과, 그들의 고통을 측은하게 여기는 측은지심을 발휘한 것이다. 나의 선행이 널리 알려져 명예를 얻고자 함도 아니고, 그들의 고통을 외면하였다고 훗날의 비판을 면하고자 함도 아니었다. 그저 곤경에 처한 사람들이 잘 살아주기를 바라는 할머니의 마음을 그대로 실천한 것뿐이었다.

몸이 불편하여 대중교통을 편하게 이용하지 못하는 사람들, 졸지에 사랑하는 가족을 사고로 잃고 힘들어 하는 가족들, 안전을 위하여 좀 더 나은 노동 조건을 요구하는 노동자들, 가족과 미래를 위하여 이역만리 한국 땅에서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 그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그들이 잘 살기를 바라는 할머니의 마음이 절실한 시대다. 어린 시절 우리의 배를 토닥이며 들려주시던 측은과 불인의 마음 자장가, 그 자장가 소리가 다시 우리 사회에 은은하게 울려 퍼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한 해가 저물고 새해가 오면, 그 전설이 현실이 되고, 그 자장가가 애창가가 되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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