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청라언덕] 부동심(不動心), 부동산(不動産)

채정민 기자
채정민 기자

부동심(不動心). 어떤 충동이나 외부의 자극에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이르는 말이다. 맹자는 제자 공손추가 어떻게 부동심을 가질 수 있는지 묻자 이렇게 답했다. "스스로 돌이켜 봐 옳지 못하면 비록 천한 사람일지라도 내가 양보한다. 스스로 돌이켜 봐 옳으면 비록 천만 명일지라도 밀고 나간다."

부동심에서 한 글자만 바뀌어도 뜻이 확 달라진다. 마음 심(心) 대신 재산 산(産)을 두면 토지나 건물과 같이 움직여 옮길 수 없는 재산을 뜻하는 부동산이 된다. 부동산을 앞에 두고 부동심을 갖기란 쉽지 않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의 삶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그런 만큼 부동산 때문에 웃고 우는 일이 흔하다.

부동산, 특히 집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각별한 존재다. 나섰다 돌아가 몸과 마음을 편히 누일 수 있는 곳, 고향과 그리 다르지 않은 의미로 와 닿는다. 특히 '내 집'이란 말은 가슴을 뛰게 만든다. '처음 갖는'이란 말이 그 앞에 붙으면 더하다. '처가살이가 굶는 내 집만 못하다'는 속담은 요즘 시대에도 귀에 착 붙는다.

집이 우리들에게 정서적으로만 귀한 건 아니다. 그 못지않게 투자 대상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나와 가족이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 갈 수 있는 공간이냐는 문제를 넘어 향후 가격이 오를 거라는 기대가 담겨 있는 경우가 많다. 다른 무엇보다 효과적인 재산 증식 수단으로 인식한다. 그러다 보니 집값이 출렁이면 마음도 따라 흔들린다. 이미 부동심은 다른 나라 얘기가 된다.

지금 집값 때문에 속이 타들어 가는 이들이 많다. 지난해까지 끝을 모르고 치솟던 주택 매매 가격이 올해 들어선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기준금리가 연거푸 인상되고 집값이 고점을 찍었다는 인식이 확산하는 등 여러 요인이 겹치면서 부동산 시장이 꽁꽁 얼어붙었다. 2008년 금융위기 때보다 더 극심한 '거래 절벽' 현상이란 말도 나온다.

지난해 부동산 불패 신화를 철석같이 믿고 주택을 구매한 '영끌(영혼까지 끌어 대출)족' 사이에선 비명 소리가 들린다.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 등 가계대출 금리가 급등하면서 이자를 감당하기 버거워졌다. 변동금리로 받은 대출이라면 부담이 더하다. '벼락거지'(부동산 등 자산시장이 크게 성장해 이윤이 커지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이들을 이르는 말) 피하려다 '영끌거지'가 된다는 소리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당분간 부동산 시장이 활기를 띠기 어려울 거란 전망이 많다. 내년에도 경제 침체 여파로 집값 하락세가 지속될 거란 예상이 대부분이다. 이런 가운데 기준금리 인상 폭과 속도가 집값 변동 추이를 결정할 변수라는 얘기도 나온다. 집을 장만하기 위해 목돈을 마련하는 것과 금리가 밀접한 관련이 있어서다. 현실적으로 주택 구입 자금을 마련하는 데 은행권 문을 두드리지 않아도 되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싶다.

주변에서 종종 묻는다. 집을 언제 사는 게 좋은지. 부동산 관련 전문가들을 접하는 게 일이다 보니 자주 듣는 질문이다. 좀 더 기다려 보라곤 하지만 언제까지 그러라고 콕 집어 말하긴 어렵다. 수십 년 이 바닥에서 구른 이들도 단언하기 힘든데, 기자랍시고 현장에서 잠시 굴렀을 뿐이니 쉽게 말해 주기 힘들 수밖에 없다.

그래도 굳이 한마디 건넨다면 (뻔하지만) 이 말을 해주겠다. '필요할 때 사는 게 맞다'고. 재산 증식 때문에 필요한 게 아니라면 오르내리는 부동산 가격 탓에 부동심을 유지하지 못할까 봐 고민할 일도 적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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