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청라언덕] '부러진 다리' 함께 돌보는 공동체

서광호 사회부 차장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대표가 20일 오전 서울 5호선 광화문역에서 지하철 탑승 시위에 앞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대표가 20일 오전 서울 5호선 광화문역에서 지하철 탑승 시위에 앞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세계적으로 저명한 미국의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1901~1978)는 인류 문명의 시작을 '원시인의 부러진 다리뼈'에서 찾았다. 미드는 강연에서 "인류 문명의 첫 흔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한 학생의 질문에 다소 의외의 답을 내놓았다. 바로 "부러졌다가 회복된 대퇴골(大腿骨)"이라고 한 것이다.

흔히 생각하는 도구나 유물이 아니었다. 인간의 높은 지능을 드러내는 물건이나 손을 자유자재로 사용했다는 각종 증거를 기대하기 마련인데, 답변은 전혀 달랐다. 미드는 약 1만5천 년 전 부러졌다가 치유된 사람의 다리뼈를 고대 문명의 시작으로 지목했다.

대퇴골은 고관절과 무릎을 연결하는 넓적다리뼈(허벅지)다. 인간 몸속의 200여 개 뼈 중에서 가장 크다. 이 뼈가 부러지면 회복할 때까지 6주 이상이 걸린다. 원시시대에 이 같은 부상은 곧 죽음과 같다. 곳곳에 도사리는 야생동물의 위협을 피해 도망칠 수 없기 때문이다. 스스로 사냥하기도 힘들어 굶어 죽을 수밖에 없다.

이와 달리 부러진 다리뼈가 회복된 흔적은 누군가가 다친 사람을 돌봤다는 증거다. 긴 시간에 걸쳐 부상자가 회복할 수 있도록 음식을 나눠 먹고, 안전한 곳에서 지켜줬다고 해석할 수 있다. 다친 사람을 돌보다가 자신도 위험에 노출될 수 있는 환경에서 다친 사람을 버리지 않았던 셈이다. 즉, 어려운 상황에 놓인 타인을 돕는 '공동체의 돌봄'이 인류가 문명을 이룩할 수 있었던 밑바탕이 됐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미드의 관점은 약육강식과 적자생존, 승자독식이라는 사회진화론에 반한다. 인간 사회가 마치 포식자가 피식자를 잡아먹는 동물 세계와 같다는 냉혹한 인식에 대한 비판으로 볼 수 있다.

다른 동물보다 육체적인 능력이 떨어지는 '연약한 인류'가 오늘날과 같이 지구상에 가장 번창한 종이 된 원동력은 서로를 죽이거나 약자를 버리는 '생존경쟁'이 아니라 서로를 돌보고 약자를 챙기는 '공동체 의식'라는 교훈이다. 공존과 연대, 공감 등이 사회진화론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인류의 숨겨진 진짜 가치라는 것.

이러한 공동체 의식은 사회가 발전하면서 개인 차원의 연대와 감정적 공감을 넘어 법과 제도로 정착돼 왔다. 약자에게도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가 있다는 인식을 오늘날 우리는 공유하고 있다. 나아가 국가 차원의 복지와 보험이 마련돼 사회경제적 약자를 챙기고 각종 위험에서 구성원들을 보호한다.

오늘날 우리에게 '부러진 다리'를 가진 존재는 누구일까?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나는 장애인을 꼽고 싶다. 이들은 선천적으로, 또는 후천적으로 회복할 수 없는 장애를 안고 살아간다. 나 역시도 장애인 가족이다. 불의의 사고로 다쳐 장애인이 된 친족이 있다. 인도(人道)와 건물의 작은 턱이 얼마나 큰 장벽인지 누구보다 실감하고 있다. 버스는 엄두도 못 내고, 도시철도는 승강기가 갖춰진 곳만 이용할 수 있다. 이게 우리의 현실이다.

그래서 최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출근길 지하철 시위를 보는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에 마음이 무겁다. 시민 불편을 유발한다는 비난에 앞서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조금만 더 귀 기울일 수 없을까? 이동권 보장과 장애인 권리 예산 확보, 관련 법률의 제·개정 등에 대해 우리 사회가 어디까지 수용할 수 있을지 이성적으로 논의할 수 없을까?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 갈등하도록 방치할 게 아니라 정책과 제도를 책임지는 사람들이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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