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 가난 속 반듯하게 자란 딸이 유방암…"알바 좀 쉬어라" 울면서 빌어

남편이 진 빚 갚느라 어렵게 살아…그런 남편은 심장마비로 떠나
공황장애·고혈압·고지혈증 앓으며 기초생활비로 딸 3명 키워
성실함 무기로 교대 합격한 둘째, 치료 앞두고 "짐이 돼 미안"

지난 30일 유서진(가명·55) 씨가 유방암 판정을 받은 딸 권예서(가명·22) 씨를 안아주고 있다. 윤정훈 기자
지난 30일 유서진(가명·55) 씨가 유방암 판정을 받은 딸 권예서(가명·22) 씨를 안아주고 있다. 윤정훈 기자

전화는 질 나쁜 협잡꾼이다.

경쾌한 벨소리로 유인한 뒤 아무렇지 않게 나쁜 소식을 전하는, 피도 눈물도 없는 놈.

그래서 유서진(가명·55) 씨는 전화가 싫다. 남편이 심장마비로 갑자기 떠난 날도 전화가 문제였다. 그날 저녁에 첫눈이 왔는데, 웬일인지 남편에게서 전화가 없었다. 첫눈이 내리면 언제 어디서든 전화를 걸어 첫눈 소식을 알리던 남편이었다. 의아함이 불안으로 바뀔 때쯤 전화가 왔다. 수화기 너머로 기다리던 남편의 목소리 대신, 남편이 쓰러졌으니 얼른 가게로 오라는 지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화를 끊고 곧장 남편의 인쇄소로 달려갔으나 이미 남편은 자는 듯 숨져 있었다.

그로부터 6년 뒤, 오늘도 어디선가 서진 씨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있다. '내 딸 예서♡'에게서 온 전화다. 그 네 글자에 기쁜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다.

"엄마.... 나 가슴에서 피 나와...."

또다시 다가올 충격을 알지 못한 채.

◆빛 없이 빚만 있는 삶…과로사한 남편 장례 중 아내도 과로로 응급실

서진 씨의 삶은 고됨의 연속이었다. 서진 씨는 대구의 명문 여고를 졸업했으나 집안 형편으로 대학 진학은 포기했다. 이후 경북의 한 병원에 간호조무사로 취직했고 그러다 같은 중학교 1살 선배였던 9급 공무원 남편과 1993년 결혼해 어찌어찌 살림을 꾸려나갔다.

남편이 주식 투자에 실패해 3천만 원가량 빚이 생기면서부터 본격적으로 형편이 기울기 시작했다. 친정에서 어렵게 빌린 돈과 전셋집 보증금으로 압류는 막을 수 있었지만, 보증금을 빼느라 다 쓰러져가는 시골 집으로 이사를 해야 했다. 옛날 집이라 화장실이 외부에 있었는데, 날이 추우면 화장실에 있던 세탁기가 통째로 얼기도 했다. 서진 씨는 그때마다 수돗가에 쭈그려 앉아 얼어붙은 옷들을 손으로 빨곤 했다. 힘든 생활 중에도 성실하게 돈을 모으고 빚도 갚으며 다시 읍내로 나오게 됐다.

이제 한숨 돌리나 했는데, 2010년쯤 남편이 또 사고를 쳤다. 1억 원에 달하는 빚이 생겼다. 남편은 조카들을 보살피느라 빚을 낼 수밖에 없었다고만 설명하고 더 자세히 말하지 않았다. 서진 씨는 그가 또 주식을 하다가 돈을 날렸겠다고 짐작했다. 이유가 뭐든 빚은 이미 생긴 후였다. 남편이 공무원을 관두고 받은 퇴직금과 전셋집 보증금을 보태 겨우 빚을 갚았다. 그리고 새로 이사한 집 근처에 대출을 받아 작은 인쇄소를 차렸다. 미운 남편이었지만 그 후로 남편은 정말 열심히 일했다. 책, 현수막, 식당 메뉴판 디자인 등 닥치는 대로 일거리를 받아왔다. 마감 기한을 맞추기 위해 몇 날 며칠을 잠도 안 자고 작업에 몰두했다. 직원을 둘 형편도 안 돼 그 많은 일을 혼자 해치워냈다.

과로는 비극을 불렀다. 6년 전 어느 겨울날, 남편은 이틀간 밤샘 작업을 마치고 사무실 한편에서 쪽잠을 청했다. 그게 자신의 마지막이 될 줄은 남편도 몰랐을 거다. 그렇게 남편은 수면 중 심장마비로 허망하게 세상을 떠났다. 서진 씨 역시 과로로 역류성 식도염, 고혈압, 고지혈증 등이 한꺼번에 찾아와 남편의 장례식이 치러지던 두 번째 날 밤 응급실로 실려 갔다. 다음날 남편의 장지엔 가지도 못했다.

◆가난 속에서 어렵게 교대 들어간 딸… 그런 딸에게 찾아온 유방암

비극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남편이 떠난 후 심각한 공황장애가 생긴 바람에 서진 씨는 병원 일을 그만둬야 했다. 기초생활수급자가 된 서진 씨는 한 달 140만 원으로 딸 3명을 힘겹게 키워나갔다. 월세와 생활비 내기도 빠듯해 지인이 얻어다 주는 편의점 폐기로 종종 식사를 해결하고, 난방비를 아끼기 위해 겨울엔 거실에 텐트를 치고 잠을 잤다.

이렇게 힘든 상황에서도 반듯하게 자라준 딸들은 서진 씨의 보물이었다. 특히 교대에 다니며 혼자 모든 걸 척척 해내는 둘째 딸에겐 늘 고마움과 미안함이 공존했다. 권예서(가명·22) 씨는 학창 시절 좋은 담임선생님들을 많이 만난 덕에 교사의 꿈을 품게 됐다. 오로지 '성실함'을 무기로, 고등학교 시절 전교 1~3등을 꾸준히 유지하며 꿈꿔왔던 교대에 합격했다. 그 후 자취를 시작한 예서 씨는 평일에 학교 수업이 끝나면 과외 아르바이트, 주말엔 마트 캐셔로 일하며 학업과 생계를 병행해 나갔다. 지난해 두 차례 교생 실습도 훌륭하게 마친 예서 씨는 1월부터 본격적으로 임용시험 준비에 나설 계획이었다.

유방암은 예서 씨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전혀 생각해 본 적 없고, 있어서도 안 될 일이었다. 사실 지난 교생 실습 때부터 샤워할 때마다 가슴 쪽에 이상한 혹 같은 게 만져졌지만, 일단은 실습을 마치는 게 중요했다. 옷을 갈아입다가 브래지어에 맺힌 붉은 핏자국을 발견했을 때도, 조별 과제 발표를 마치는 게 우선이었다. 이후 병원에서 검사를 받고 의사에게 '유방암 2기이며 종양이 상당히 크다'는 말을 들은 뒤에도, 종강까지 학교를 계속 다녔다. 마트 아르바이트도 사장과 약속한 지난 12월까지 계속했다. 서진 씨는 그런 딸에게 제발 좀 쉬라고 울면서 빌었다. 하지만 엄마를 닮아 너무 성실했던 예서 씨는 학점도, 알바비도 포기할 수 없었다.

현재 대학병원 치료를 앞둔 예서 씨. 예서 씨에겐 암 자체보다 현실이 더 무서웠다. 치료비를 걱정하며 짐이 돼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딸을, 서진 씨는 말없이 꼭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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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성금내역]

◆알코올·도박중독 남편 피해 네 아이 돌보는 노수영 씨에 2,235만 원 전달

가정폭력 트라우마 시달리며 알코올·도박중독 남편을 피해 아이 넷을 돌보고 있는 노수영(매일신문 12월 20일 자 10면) 씨에 2천235만2천522원을 전달했습니다.

이 성금에는 ▷구미현대병원 25만원 ▷(주)삼이시스템 10만원 ▷ 달서구약사회 ▷세움종합건설(조득환) 10만원 ▷이신덕 30만원 ▷최영철 10만원 ▷한은희 10만원 ▷이진술 5만원 ▷이병규 2만5천원 ▷윤영선 2만원 ▷조혜란 2만원 ▷최선태 2만원 ▷김강현 1만1천원 ▷김종식 1만원 ▷김태상 1만원 ▷박미화 1만원 ▷배정준 1만원 ▷안영숙 1만원 ▷이서영 1만원 ▷이현민 1만원 ▷정혜원 1만원 ▷이순덕 5천원 ▷조철제 5천원 ▷'지원정원' 3만원 ▷'2022마지막지원' 5천원 ▷'따스한햇살' 5천원이 더해졌습니다. 성금을 보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장애아동 구하려다 중증 화상 입고 의식불명된 김순이 씨에 3,033만 원 전달

화재가 발생해 장애로 인해 거동이 불편한 아동을 구하려다 신체 표면의 70% 화상을 입고 의식불명 상태에 빠진 김순이(매일신문 12월 27일자 10면) 씨에 56개 단체, 292명의 독자가 3천33만1천507원을 전달했습니다. 성금을 보내 주신 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건화문화장학재단 200만원 ▷(주)대구은행 100만원 ▷(주)세원정공물산 100만원 ▷피에이치씨큰나무복지재단 100만원 ▷대구상서고학생들 91만6천300원 ▷(주)태원전기 50만원 ▷(주)한라개발 50만원 ▷세무법인송정 50만원 ▷스마트치과 50만원 ▷신라공업 50만원 ▷(주)태린(이동훈) 45만원 ▷(주)신행건설(정영화) 30만원 ▷대구교사노조 30만원 ▷지노인터내셔날 30만원 ▷(주)동아티오엘 25만원 ▷(주)고신자산관리(최정숙) 20만원 ▷금강엘이디제작소(신철범) 20만원 ▷대백선교문화재단 20만원 ▷대창공업사 20만원 ▷대흥분쇄기(한미숙) 20만원 ▷법무사김태원 20만원 ▷(주)구마이엔씨(임창길) 10만원 ▷(주)우주배관종합상사(김태룡) 10만원 ▷(주)이구팔육(김창화) 10만원 ▷(주)태광아이엔씨(박태진) 10만원 ▷경주천마자동찬전문학 10만원 ▷김영준치과 10만원 ▷대구동양자동차운전전문학원(최우진) 10만원 ▷세움종합건설(조득환) 10만원 ▷신세계로약국(박태환) 10만원 ▷우리들한의원(박원경) 10만원 ▷홍천뚝배기(서금희) 10만원 ▷화순순복음중앙교회 10만원 ▷건천제일약국 5만원 ▷기업이전호세무사 5만원 ▷김남화대흥당약업사 5만원 ▷김천한약방 5만원 ▷다빈치커피대명마루점 5만원 ▷명EFC(권기섭) 5만원 ▷베드로안경원 5만원 ▷봉란옥(이순자) 5만원 ▷세무사박장덕사무소 5만원 ▷수가성식당(최병기) 5만원 ▷전피부과의원(전의식) 5만원 ▷창성공업사(남정복) 5만원 ▷채성기약국(채성기) 5만원 ▷칠곡한빛치과의원(김형섭) 5만원 ▷황금손부동산 5만원 ▷국선도풍각수련 3만원 ▷매일신문구미형곡지국(방인철) 3만원 ▷청산(우창하) 3만원 ▷대원전설(전홍영) 2만원 ▷서성상회(박형근) 2만원 ▷유앤영 1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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