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병역 비리 근절 없이 평화 외치는 건 한심한 낙관론일 뿐

병역 비리 사건이 또 터졌다. 새해 벽두부터 북한의 위협에 직면한 마당에 국민적 시선이 온전할 리 없다. 고위공직자, 법조인의 자녀를 비롯해 프로스포츠 선수와 연예인 등이 연루됐다고 한다. 사법 당국의 수사선상에 오른 사람이 세 자릿수라 하니 일부의 일탈로 보기 어렵다. 잊을 만하면 반복되는 조직적 비리라는 점에서 심각성이 커진다.

신체 일부를 훼손하는 고전적 수법이 아니다. 뇌 신경세포가 일시적으로 과도한 흥분 상태가 되면서 발작하는 뇌전증 진단을 받아 입대 부적격자가 되려 했다. MRI 등 영상 판독 진단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노렸다. 평소 병력 등이 진단에 중요한 요소라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그래서 꾀병 등 아픈 척 연기하는 것도 마다치 않았다고 한다. 자괴감이 들었을 법하지만 병역 면탈이 가져다줄 현실적 이익을 택했다. 특히 건장한 프로스포츠 선수들의 병역 비리는 반복적이라는 점에서 여론의 원성이 높다. 2004년에는 프로야구 선수들이 사구체신염 판정으로, 2008년 프로축구 선수들은 어깨 탈구 수술로 병역을 피하려 했던 흑역사가 있다.

병역은 국민 누구나 공평하게 짊어져야 함이 마땅하다. 국민의 안온한 삶을 위해 장정들이 돌아가면서 보초를 서는 셈이다. 우리 문화를 전 세계에 알린 방탄소년단(BTS)도 제 발로 입대하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검찰과 병무청이 대대적인 수사에 착수했으니 수사 결과를 기다릴 일이지만 군역을 인식하는 세태가 달라지지 않았다는 데서 착잡한 심정이 된다. 더구나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현재진행형이고 북한의 위협이 상시적인 때이지 않은가.

병역 비리는 단순한 병력 부족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돈 있고, 줄 있는 사람은 군역을 피할 수 있다는 예외의 문이 존재하면 너도나도 그 문으로 들어가려 하게 된다. 군역을 회피하는 게 최선이라는 그릇된 인식으로는 국가를 지탱해 나갈 수 없는 노릇이다. 국가 존립 기반을 좀먹는 지름길이다. 병역 비리를 근절하지 않고 국가 미래 청사진을 얘기한다는 건 한심한 낙관론에 불과하다. 발본색원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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