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소아·청소년을 중심으로 감기 환자가 많아지면서 지역 소아청소년과 병·의원에서는 이른 아침부터 대기하는 아동, 보호자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환자가 많은 병원에서는 진료를 조금이라도 빨리 보려고 문이 열리자마자 달려가는 '오픈런'도 흔히 볼 수 있는 일이 됐다.
◆이른 아침부터 북새통
4세 쌍둥이 남매를 둔 전모(34) 씨는 올 겨울 두 자녀가 돌아가며 감기에 걸리면서 병원에 갈 때마다 녹초가 된다. 기본 1시간에서 길게는 2시간 가까이 아픈 아이와 시름해가며 진료 대기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 씨는 "병원 예약 전용 애플리케이션에 들어가자마자 오전 진료 마감이 된 적도 있고, 운 좋게 오전 9시 20분에 예약을 걸었는데 이미 40번대였던 적도 있다"며 "병원이 너무 북적여서 오히려 다른 병에 옮아올까봐 걱정될 정도다. 대기가 너무 심하다 싶을 때는 다른 이비인후과에서 진료를 본 적도 있다"고 말했다.
달서구의 한 소아청소년과 병원에서 만난 박모(39) 씨는 "달성군 구지면에 살지만 어디를 가도 기본적으로 20명 정도는 대기가 있기 때문에 멀어도 이왕이면 잘 한다는 곳으로 찾아왔다"며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에 가려면 '오픈런'은 기본이고, 오전에 빨리 진료를 받으려면 8시부터는 기다려야 한다. 병원에서 접수를 받기 전부터 아이 조부모, 부모들이 길게 줄을 서 있는다"고 했다.
대기가 덜한 곳을 찾아 '원정 진료'를 보러 가는 경우도 생겼다.
6살 아들과 함께 북구의 한 아동병원을 찾은 A(35) 씨는 "집 근처인 달서구에 있는 아동병원은 오전 8시 30분 문을 여는데 그보다 2시간 전인 최소 새벽 6시 30분에는 가서 대기표를 뽑아야 한다"며 "그렇게 일찍 가도 대기가 10번일 정도로 사람이 많기 때문에, 이동하는 데 40분이 걸려도 그나마 덜 붐비는 곳으로 왔다"고 말했다.

◆개업 대비 폐업률 높아져
행정안전부의 '지방행정 인허가 데이터'에 따르면 과거 200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소아 진료를 하는 병·의원은 한 해 폐업이 한 건도 없거나, 폐업을 하더라도 연간 개업 건수 대비 폐업 비율은 10~20% 수준이었다. 그러다 2009년 개업 대비 폐업률은 61.2%로 급증했고, 이후 거의 매년 40% 이상의 높은 폐업률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2000~2022년 소아 진료를 실시하는 병·의원의 개업 건수 대비 폐업 비율은 36%로 같은 기간 피부과(32%), 내과(29.3%) 병·의원의 폐업률보다 높은 편에 속했다.
대구 구·군별로 0~19세 인구 대비 소아청소년과 진료가 가능한 병·의원을 분석한 결과 인구 대비 병·의원 1곳당 환자가 가장 많은 곳은 달서구(691명)였다. 이어 ▷수성구(680명) ▷달성군(536명) 등이 대구 평균(492명)을 웃돌았고, ▷북구(481명) ▷동구(374명) ▷남구(317명) ▷중구(272명) ▷서구(250명) 등이 뒤를 이었다.
병·의원 1곳당 환자가 가장 많은 달서구를 동별로 분석하면 최근 대단지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유천동이 1곳당 환자가 5천385곳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용산동(4천374명)이 높은 편에 속했다.
수성구 내 1곳당 환자가 많은 곳은 ▷두산동(2천39명) ▷상동(2천33명) ▷고산동(924명) ▷범어동(917명) 순이었다.
소아청소년과가 '힘들고 수익은 저조한 과'라는 인식이 생기면서 필수 의료의 근간이 되는 소아청소년과 의원의 증가세도 제자리걸음이었다.
통계청의 '시도별 표시과목별 의원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09~2022년(1분기 기준) 대구의 소아청소년과 의원은 111곳에서 115곳으로 3.6% 증가에 그쳤다.
반면 의사들 사이에서 선호도가 높은 과에 속하는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은 37곳에서 73곳으로 97.3% 급증했다. 이어 피부과는 39.6%(53→74곳), 안과는 25.3%(79곳→99곳)로 증가했다.
◆수가는 낮은데 저출산으로 이중고
의료계에서는 수년 전부터 저수가 체계와 저출산 여파가 맞물려 소아청소년과를 외면하는 의사들이 많아질 것이라고 경고해 왔다.
소아청소년과는 특성상 다른 진료과와 달리 각종 시술이나 검사와 같은 비급여 항목이 거의 없다. 소아 환자들의 진찰료에만 의존해야 수익이 나오는 구조인 것이다.
이렇듯 수익은 낮은 상황에, 소아 환자의 특성상 일의 강도가 높다는 점도 소아청소년과가 기피과로 전락한 원인으로 꼽힌다.
지역 한 종합병원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는 "울고 떼쓰는 아이들을 제지하고 달래가면서 보호자까지 상대해야 하기 때문에, 소아 환자 1명을 진료하는 게 성인 환자 1명을 진료하는 것보다 몇 배나 힘들다. 그런데 수가는 성인을 진료하는 것과 같다"고 토로했다.
이어 "인건비, 임대료 등을 따지면 하루 80명 정도는 환자를 봐야 수익이 난다고 보는데, 저출산으로 소아 자체가 줄어들면서 수가 인상이나 인건비 지원이 아니고서는 수익을 낼 방법이 없는 상황이다"고 말했다.
달서구의 한 소아청소년과 의원 원장은 "소아청소년과가 있는 병원에서는 돈이 안 된다고 과를 없애고 전문의를 내보내는 경우도 있다"며 "한 곳에서 오랜 시간 소아청소년과의원을 운영했지만, 동네 어린이가 줄면서 '소아청소년과' 대신 '의원' 간판을 내걸고 내과, 피부과, 이비인후과로 활로를 찾기도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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