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칼럼] 불판만 갈 수 있나? 심판은?

최경철 세종취재본부장
최경철 세종취재본부장

지난해 연말 어느 모임에서 만난 한 간부급 경찰관은 요즘 경찰 수사의 품질에 대해 솔직한 자평을 내놨다. 전임 문재인 정부의 간판 정책이었던 검경 수사권 조정이 이뤄진 결과, 경찰이 독자적 수사권을 갖게 됐지만 온갖 부작용이 속출하는 중이라는 고백이었다.

경찰의 수사 업무량 폭증으로 인해 수사 지연 현상이 일상화돼 조속한 수사 결과를 애타게 기다리는 민원인들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업무가 쏟아지니 수사 업무를 기피하는 경찰관들 역시 급증했다.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직접 수사를 거의 하지 않게 된 검찰은 인력이 그대로지만 업무량은 확 줄었다. 여유가 많이 생겼으니 경찰이 보낸 기록을 과거보다 훨씬 더 꼼꼼하게 볼 것이고 이 여파로 인한 보완 수사 요구까지 급증하면서 수사 지연이 심각해졌다."

짧은 몇 마디였지만 검찰 개혁을 돌림노래처럼 부르며 검경 수사권 조정을 밀어붙였던 문재인 정부 때 기억은 기자의 머릿속에서 파노라마처럼 되살아났다.

검찰 개혁 돌림노래가 가져온 현장 결과물을 곱씹다 보면 전임 정부의 유명한 돌림노래가 한 곡 더 떠오른다. 햇볕보다 더 따스하고 온화했던 대북 정책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미사일 도발을 일삼는 요즘 북한을 보고 있노라면 "북한이 변할 것"이라면서 종전 선언을 주장하던 전임 정부의 낭만적 대북관은 헛웃음을 짓게 만든다. 오죽하면 윤석열 대통령이 9·19 군사합의 효력 정지 검토 지시까지 4일 내렸을까.

기자가 정초부터 과거를 복기하는 이유가 있다. 행정부 권력은 바뀌었지만 국회 의석의 다수를 점하는 입법 권력은 여전히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보수적인 부처로 불리는 농림축산식품부까지 최근 국회 다수당 더불어민주당에 대해 발끈했다. 민주당 주도로 지난달 말 쌀값 안정화법(양곡관리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 부의되자 정황근 장관이 직접 나서 반박한 것이다.

개정안은 쌀 초과 생산량이 3% 이상이거나 가격이 5% 이상 떨어지면 과잉 생산된 쌀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수매하도록 했다. 이리 되면 쌀 과잉 생산을 유도하고 연평균 1조 원의 재정 부담까지 발생해 지속 가능한 정책이 절대 될 수 없다는 것이 농식품부 입장이다. 전형적 포퓰리즘이라는 비판도 쏟아지는 중이다.

민주주의 체제는 국가와 시민사회를 분리, 법치라는 명확한 규칙 체계 아래에서 심판과 선수를 나눔으로써 안정되고 예측 가능한 경기장을 만들었다. 심판은 입법·행정·사법 3부문으로 다양화해 심판 집단 내 견제·균형 구도까지 이뤄 내면서 공정성을 극대화, 지배의 시대에서 통치의 시대로 전환시켰다.

그러나 최근 여러 결과치를 보면 문재인 정부, 그리고 민주당이 다수당을 차지한 지금의 국회가 지난 몇 년간 심판을 공정하게 봤는지에 대한 물음표가 쏟아진다. 내 신념은 무조건 옳고, 내 편 챙기기에만 몰두한다는 지적을 받는 불공정 심판이 자리를 지킨 경기장이 아니었느냐는 것이다.

여러 비판과 시비에 휩싸인 전·현직 심판이 정초부터 전직 심판 집에 모여 앉아 정권 교체 이후를 두고 '민주주의 후퇴'를 운운했다는 얘기도 들려왔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지난 2일, 경남 양산에 있는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를 찾아가자 문 전 대통령이 현 정국에 대해 "민주주의와 역사가 퇴행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심판이 때로는 오심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오심을 바로잡는 의지와 능력도 갖춰야 한다. 끝내 오심을 인정하지 않으면 심판도 고깃집 불판 신세와 다를 바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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