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책] 급류

정대건 지음/ 민음사 펴냄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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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건 지음/민음사 펴냄
정대건 지음/민음사 펴냄

불행의 시작은 불륜이었다. 정확히 말해 '나'의 아빠와 '너'의 엄마의 불륜. 그것 때문에 첫사랑에 빠졌던 고등학생인 나와 너의 사이는 잔잔한 물결처럼 흘러갈 수 없었다. 화가 난 '나'는 불륜의 실체를 파헤치러 불륜이 있는 현장에 뛰어든다. '너'는 그런 '나'를 뜯어말리지만 배신감에 눈이 먼 나는 그들의 뒤를 밟는다. 하지만 눈앞에 펼쳐진 건 예상치 못한 결말이다. 나의 아빠와 너의 엄마가 급류에 휩쓸려 죽는다. 그날 '나'와 '너'가 그곳에 가지 않았더라면 우리 인생은 달라졌을까. 아빠와 엄마가 죽지 않았을까.

지난 2020년 '한경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정대건 소설가의 두 번째 장편소설이 나왔다. 급류. 소설 제목처럼 이야기도 급류 같다. 이야기가 이끄는 힘이 무섭다. '나'인 도담과 '너'인 해솔의 얽히고설킨 이야기의 급류 속에 순식간에 빨려들어간다. 함께 울고 함께 안도한다.

"너 소용돌이에 빠지면 어떻게 해야 하는 줄 알아? 수면에서 나오려 하지 말고 숨 참고 밑바닥까지 잠수해서 빠져나와야 돼."

수영에 자신있던 도담의 말이다. 죽음을 목격한 도담과 해솔은 불행의 소용돌이에 속수무책으로 휩싸인다.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오는 법을 도담은 알고 있다. 하지만 의문과 죄책만 남은 가족의 죽음 앞에서 소용돌이를 벗어나기 위한 발버둥은 힘이 없다.

숨을 참는다. 밑바닥까지 내려간다. 그럼에도 도담과 해솔은 소용돌이에서 한발짝 내딛기가 힘들다. 과거 기억은 묻어두고 최선을 다해서 행복하려 한다. 끔찍한 기억에서 벗어나고자 도담은 술을 마시고, 끔찍한 기억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해솔은 술에 입을 대지 않는다. 하지만 이들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죄책의 무게는 무겁고, 사람들은 자신들을 '불행의 상징'인듯냥 쳐다보며 떠난다. 벌 받아야 마땅한 존재들이었다.

시간이 해결해줄거야. 우리는 삶에서 어떤 고난을 마주했을 때 시간의 힘을 자주 빌린다. 혹은 시간의 힘을 빌려 누군가에게 위로를 건넨다. 정작 아픔의 기억과 내가 멀어지지 못했을 땐 시간의 힘과 위로는 야속하다. 하지만 그 기억으로부터 멀리 걸어 나갔을 때, 어느덧 가슴 속 상처는 아물어있다.

도담과 해솔의 이야기도 이 진리를 말한다. 급류도 언젠가는 느려진다.

사고 후 헤어졌다 성인이 돼 우연찮게 만난 이들은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서로를 미친듯이 끌어안지만 다시 이별을 선택한다. 그리고 시간이 많이 흘러 다시 재회한다. 불안정했던 도담과 해솔은 한결 편안하다. 그리고 다시 용기를 낸다. 이전과는 다른 방식이다. 행복해지기 위한 강박에 사로잡히는 게 아니라 지난 아픔을 온전히 마주하는 것. 자기혐오에 빠졌던 자신들을 용서하고 사랑해주는 선택을 했을 때 도담과 해솔은 다시 세상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부주의 때문에 일어나는 사고도 있지만 설명할 수 없는 일들도 많이 일어나. 자다가 말벌에 쏘여 영영 깨어나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처참한 교통사고 현장에서 음주운전을 한 운전자는 살아남고 아무 잘못 없는 가족이 사망하는 부조리한 일들이 벌어져…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게 아무도 바라지 않은 일이었다는 걸, 뜻밖의 사고였다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는 거야."

정대건 작가는 세상에 회복하지 못할 상처는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의문 투성인 상처가 난 건 절대 네 탓이 아니라고 끊임없는 위로를 한 겹 더한다.

의문투성인 희생과 죽음이 많았던 지난해였다. 해결할 수 없이 덮어둬야만 했던 상처를 감내해야 하는 현재의 우리에게 이 책은 어쩌면 또다른 위로의 방식을 건네는지도 모른다. 불행을 밀어내는 것은 결국 우리, 나 자신의 몫이어야 한다. 300쪽, 1만4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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