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덤’으로

김나영 소프라노

김나영 소프라노
김나영 소프라노

이태리 로마 유학 시절 때의 일이다. 로마에서 학교를 다니며 방학 때나 주말을 이용해 다른 도시로 레슨을 받으러 다녔다. 땅덩이가 넓은 만큼 그 때마다 도시 간 이동을 위해 몇 시간씩 기차를 탔었다.

당시 언어 공부를 게을리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 나는 이동시간을 이용해 기차 안을 나만의 랭귀지 스쿨로 만들었다. 평소에 공부한 문장이나 단어가 적힌 노트를 꺼내 말을 건네며 대화의 장을 만들었다.

좌석에 앉아 둘러보고 친절해 보이는 시뇨라(signora·이태리어로 부인, 여사)께 'omaggio'라는 단어를 질문한 적이 있었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밝은 햇살과 함께 코랄 핑크빛 립스틱을 바르고 있던 그녀는 "음…두 가지 뜻이 있어. 마트에서 어떤 물건을 샀는데 선물처럼 다른 물건을 얹어줄 때 '증정, 덤'이라는 뜻도 있고, 고어로 쓰일 때는 기사가 주인에게 '경의'를 표하다는 뜻도 있어"라고 말했다.

단번에 이해하지 못한 내게 그녀는 마치 여왕 앞에 무릎 꿇은 기사 흉내를 내며 '경의'를 설명해주었고 핸드폰으로 검색한 마트 증정품 이미지를 보여주며 내가 '덤'이라는 단어를 이해할 때까지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그러고 나서 그녀는 "난 이 시간에 매일 기차를 타니까 네가 있으면 또 가르쳐줄게"라고 밝게 웃으며 기차에서 내렸다. 순간 마음이 따뜻해졌다. 정성껏 알려준 것도 고마운데, 당시 외국인 신분으로 외롭고 힘든 유학 생활을 하는 내게 그녀는 작은 위로가 되어주었다.

밝은 미소와 따뜻한 가르침으로 채워진 그 시간은 그녀가 내게 가르쳐준 '덤'이었다. 그 이후에도 나는 유학 생활 내내 수많은 '덤'을 받았고 지금도 감사한 마음을 품고 있다.

새해의 시작을 힘차게 한 이도 있고 예기치 못한 상황을 맞이한 이도 있을 것이다.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오늘 하루의 이 순간도 어쩌면 어제에 이어진 '덤'이다.

그렇게 주어진 오늘 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또 누군가에게 그녀 같은 존재가 되어보면 어떨까. 밝은 미소로 내 마음을 채워준 그녀의 친절. 그렇게 베풂으로 그녀의 마음 또한 채워졌으리라. 나눌수록 채워지는 법이니까. 거창하지 않아도 작은 미소를 나눠보자. '덤'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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