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홍성걸 칼럼] 얼마나 더 갈라져야 속이 시원한가

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

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
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

새해에는 덕담을 나누고 다가올 1년을 계획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계묘년은 찢기고 흩어진 이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면서 시작하지 않을 수 없다. 동서로 분열되어 서로 부모 죽인 원수처럼 으르렁대더니 최근에는 이념으로, 세대로, 남녀로, 빈부로, 장애와 비장애로 갈라지고 나뉘어 사회적 합의나 통합은 온데간데없다.

신년 여론조사에서 정치적 이념이 다르면 서로 밥도 함께 먹기 싫다는 사람이 국민의 40%를 넘고, 이념이 다른 사람들은 상대방이 국익보다 개인적 이익에 더 관심이 있다고 보는 사람이 거의 65%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념에 따른 갈등과 분열이 이토록 심각한데, 분열과 갈등을 치유하고 함께 보듬어 가야 할 정치와 정당이 알량한 정치적 이익을 위해 이를 조장하여 악용하고 있다. 얼마나 더 갈라져야 속이 시원하겠는가.

필자는 과거에 '분열의 DNA'라는 제목의 칼럼을 쓴 적이 있다. 우리에게 분열의 DNA가 있지 않고는 설명되지 않는 현상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고 상해에 임시정부를 수립했을 때도 우리 애국지사들은 항일투쟁 방식을 두고 서로 자신이 옳다고 다투다가 결국 이리저리 떠나고 말았다. 모두가 존경하는 애국지사 백범 김구 선생은 일본이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자 정파를 초월해 광복군을 만들어 참전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활동하다가 가슴에 총탄을 맞아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다. 일본군이 아니라 독립운동을 한다는 동족에 의한 가해였다. 결국 그는 광복 정국에서 안두희의 총탄에 유명을 달리했다.

광복 후 이념 갈등은 더욱 치열해졌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귀국했을 때 이화장에서 이틀간 박헌영을 비롯한 남로당 인사들을 만났다. 그들은 이승만을 자신들이 주도할 인민공화국의 대통령으로 추대하려 했지만, 철저한 반공주의자였던 이승만은 이를 단호히 거절했다. 정부 수립 과정에서 좌우익의 갈등이 극에 달했고, 여순반란이나 제주 4·3과 같은 비극이 일어나기도 했다. 불과 2년 만에 북한의 남침에 의한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좌우 이념 갈등은 정점을 이루었고 오랫동안 이 땅에 좌파의 존재 자체가 불가능해졌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좌파의 재등장이 이루어졌다. 노동 억압에 의한 급격한 경제성장 과정에서 억눌린 사회적 요구가 한꺼번에 분출되고, 권위주의 정권 시절 탄압받았던 민주화 운동 세력이 정치의 전면에 등장하면서 나타난 현상이었다. 좌우 정파의 존재는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북한 공산 집단을 머리에 이고 사는 입장에서는 수용하기 어려운 주장도 많았다. 민주화로 권위주의 정권이 사라지자 정치 과정에서 좌우 노선 대립이 격화되었고, 특히 3김 이후 정치적 구심점이 사라진 한국 정치에서 정치적 이익 극대화의 수단으로 국민을 분열시키고 갈등을 조장하는 일이 너무 많았다. 인터넷과 디지털 정치 플랫폼의 발달은 특정 정치인에 대한 팬덤을 넘어 가짜 뉴스와 거짓말을 사실로 굳게 믿는 극단적 광신도 집단을 만들어냈다. 시민사회단체 활동에 대한 정부 지원이 많아지면서 이념과 이익의 구별이 모호해졌다.

얼마나 더 이렇게 갈라지고 찢겨진 채 서로 할퀴고 살아가야 하는가. 외부의 적이나 위험이 없다면 또 모른다. 북한은 우리가 갖지 못한 핵무기를 보유하고서 하루가 멀다고 미사일을 쏴대고 있다. 우리는 무역으로 먹고사는 나라인데 자유무역은 이미 죽은 지 오래고 우방인 미국조차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워 우리 기업에 대한 압박과 차별을 공공연히 가하고 있다. 가장 큰 시장인 중국은 또 어떤가. 자동차와 반도체 등 제조업 분야에서 우리를 조만간 능가할 것이 거의 확실시되면서도 우리의 수출이나 우리 기업에 심각한 징벌적 조치를 취한다. 미중 패권경쟁과 러-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로 세계 공급망은 재편되고 있고 에너지와 원자잿값은 천정부지로 올라 국가경쟁력에 치명타를 가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5년간 마치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된 것처럼 돈 걱정 없이 잔칫상을 벌이고 때려먹더니 나라를 이렇게 만들어 놓고도 집권 7개월 된 윤석열 정부의 책임이란다. 그것도 장관급 2명과 공기업과 공공기관 임원의 70%는 여전히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임명한 사람들이 남아 있는데 말이다. 더 이상 분열과 편가르기를 조장한다면 을사오적보다 더한 매국노로 기억될 것이다. 국민도 정신을 차리자. 정치인의 편가르기 쇼에 현혹되지 말고 상식으로 평가하고 판단하자. 더 이상 후손에게 부끄러운 세대가 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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