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마음의 서랍이 있다. 행복한 기억을 보관해두는.
재희(가명·14)는 오늘도 서랍을 연다. 그리고 엄마와 함께 읍내 세차장에 갔던 기억을 꺼낸다. 일 때문에 바빴던 엄마는 세차하러 갈 때면 꼭 재희를 데려갔다. '행복셀프세차'라고 적힌 색 바랜 간판 아래, 엄마가 거품 가득 낸 워시미트를 끼고 열심히 차 앞 유리를 닦고 있다. 재희는 옆에 서서 구경 중이다. 세차가 끝난 뒤 모녀는 건너편에 있는 작은 카페에 들어간다. 늘 시키던 메뉴를 시키고, 늘 앉던 창가 자리에 앉아 담소를 나눈다. 남들에게 자랑할만한 추억은 아니지만 재희에겐 행복한 한때였다.
이제 재희는 현실의 서랍을 연다. 그 안엔 이제 입을 사람도 없는데 차마 버리지 못해 남겨둔 엄마의 옷들이 있었다. 행복한 기억이 아닌, 가지런히 정리된 슬픔만 있었다.
◆망망대해 같던 삶에 행복을 가르쳐 준 아내… 그리고 찾아온 백혈병
재희의 엄마 반윤혜(가명·34) 씨가 세상을 떠난 지 거의 한 달이 지났다. 그 한 달 내내 장상현(53) 씨는 아내가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시집올 적 보내온 사진들을 멍하니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주사가 심해 어머니에게 자주 주먹을 휘둘렀던 아버지 밑에서 상현 씨는 사랑받는 게 뭔지 모르고 컸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법도,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법도, 아무것도 몰랐다. 욕망도, 치열함도 없는 삶이었다. 중학교만 졸업하고 공사판을 전전하던 상현 씨는 이십 대 중반부터 대형트럭 운전을 시작했다.
그러다 2008년쯤 상현 씨는 친구의 추천으로 국제결혼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윤혜 씨를 만나 결혼식을 올렸다. 이듬해 재희, 그다음 해에 재준(가명·13)이가 태어났다. 빚 2천만 원을 내 마련한 19평짜리 임대주택에서 네 식구의 일상이 시작됐다. 드라마처럼 낭만적인 사랑을 한 건 아니지만, 윤혜 씨는 상현 씨에게 평범한 행복을 가져다준 사람이었다. 상현 씨는 어렸을 적 경험하지 못했던 화목한 가정을 직접 꾸림으로써 누군가와 사랑을 주고받는 법, 함께 행복한 미래를 꿈꾸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비로소 얻은 평범한 행복에 금이 가기 시작한 건 재작년 12월 말부터였다. 평소 전혀 건강에 문제가 없었던 윤혜 씨는 2021년의 마지막 날 새벽, 가슴이 아프다며 쓰러져 포항의 한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갔다. 이후 진행한 검사에서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사랑에 이어 이별까지 가르치려 하는 아내가 미워, 상현 씨는 그날 밤 아이들 몰래 많이 울었다.
◆항암치료 중 부작용 발생, 딸의 두 차례 골수이식에도 끝내…
엄마가 쓰러진 뒤 아빠의 표정이 엄청 심각해졌지만, 재희는 그때만 해도 엄마가 며칠 후면 금방 괜찮아질 거로 생각했다. 사실 한 편으론 불안한 마음이 고개를 슬쩍 들었지만, 한 살 어린 동생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강하게 버티고 있던 마음이 무너져 내린 건 지난해 3월 대구 한 대학병원에 입원한 엄마를 보러 갔을 때였다. 그곳에서 윤혜 씨는 머리가 다 빠진 채 배변 봉투를 달고 있었다. 2차 항암치료 중 알 수 없는 이유로 부작용이 발생해 엉덩이가 괴사(壞死)됐다고 한다.
이후 항암치료를 계속하다가 9월 1차 골수이식이 이뤄졌다. 윤혜 씨의 부모님이나 형제에게 골수를 기증받는 게 가장 좋은데, 윤혜 씨의 가족들은 다 베트남에 있어 불가능했다. 윤혜 씨가 베트남 사람이라 유전자 문제로 한국에서 골수 기증을 할 수 있는 건 재희와 재준이, 둘 뿐이라고 했다. 누나인 재희가 기꺼이 나섰다. 골수이식을 위해 이틀 동안 병원에 입원해 피를 뽑았으나 골수가 생착되지 않는 문제가 발생했다. 결국 재희는 11월 중 또다시 목에 카테터를 꽂고 피를 뽑았다. 이러한 재희의 노력에도 윤혜 씨의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고, 윤혜 씨는 끝내 재희와 가족들을 떠났다.
윤혜 씨가 떠난 자리를 채운 건 5천만 원에 달하는 빚이었다. 2차 골수이식부터는 건강보험 급여 적용이 안 돼 그렇게 많은 치료비가 발생했다고 한다. 골수이식을 한 공여자로서 재희가 병원에 내야 하는 비용도 300만 원이 나왔다. 아직 집을 살 때 냈던 빚도 덜 갚았고, 세 식구가 먹고살려면 상현 씨 혼자 버는 걸로는 버거운 상황이다. 여기에 5천만 원이라는 빚이 추가로 생겼다는 사실에 눈앞이 캄캄해진다.
어느 날 저녁, 정돈 안 된 부엌 식탁에 앉아 엄마의 사진을 보고 있는 세 식구. 세 사람 다 아무 말이 없다. 최근 목이 따가워 독감이 의심되지만, 3만 원이 없어 검사를 못하고 있는 재희가 입술만 달싹거리다 이내 말을 삼켰다. 재준이도 영어 학원을 다녀야 할 것 같다고 말을 꺼내려다 결국 입을 닫았다. 상현 씨는 상현 씨 나름대로 점점 커가는 재희와 재준이를 혼자 어떻게 키울지 고민에 빠져 말이 없었다. 재희의 잔기침 소리만이 침묵에 잠긴 집 안을 잠깐 채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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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성금내역]
◆장애아동 구하려다 중증 화상 입고 의식불명된 김순이 씨에 3,240만 원 전달
화재가 발생해 장애로 거동이 불편한 아동을 구하려다 신체 표면의 70% 화상을 입고 의식불명 상태에 빠진 김순이(매일신문 12월 27일자 10면) 씨에게 3천240만8천507원을 전달했습니다.
이 성금에는 ▷㈜백년가게국제의료기 100만원 ▷다우약품 50만원 ▷흥국시멘트 5만원 ▷하나회(김미라) 1만원 ▷안대용 20만원 ▷김윤기 5만원 ▷박옥선 5만원 ▷김준홍 3만원 ▷방태표 2만원 ▷신종욱 2만원 ▷홍준표 2만원 ▷김성옥 1만원 ▷우동수 1만원 ▷이정현 1만원 ▷황성광 1만원 ▷서형덕 5천원 ▷이형준 5천원 ▷김서연 2천원 ▷'김순이씨에게로' 5만원 '김시우(레오)' 1만원 ▷'한동엽 기부' 1만원 ▷'따스한햇살' 5천원이 더해졌습니다. 성금을 보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기초수급가정에서 열심히 공부해 교대 입학했으나 22살에 유방암 걸린 권예서 씨에게 3,044만 원 전달
어린 시절 심장마비로 아버지를 여의고 기초수급가정에서 열심히 공부해 교대 입학했으나 22살 나이에 유방암에 걸린 권예서 씨(매일신문 1월 3일 자 10면)에게 48개 단체, 263명의 독자가 3천44만3천원을 전달했습니다. 성금을 보내 주신 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건화문화장학재단 200만원 ▷(주)대구은행 100만원 ▷(주)세원정공물산 100만원 ▷피에이치씨큰나무복지재단 100만원 ▷(주)태원전기 50만원 ▷스마트치과 50만원 ▷신라공업 50만원 ▷한라하우젠트 50만원 ▷(주)태린(박기태) 40만원 ▷(주)신행건설(정영화) 30만원 ▷한미병원(신홍관) 30만원 ▷(주)동아티오엘 25만원 ▷(주)이구팔육(김창화) 20만원 ▷광고기획감각(손근찬) 20만원 ▷금강엘이디제작소(신철범) 20만원 ▷대백선교문화재단 20만원 ▷대창공업사 20만원 ▷중앙갤러리(정대영) 20만원 ▷(주)구마이엔씨(임창길) 10만원 ▷(주)삼이시스템 10만원 ▷(주)우주배관종합상사(김태룡) 10만원 ▷(주)태왕(김수경) 10만원 ▷김영준치과 10만원 ▷경주천마자동차전문 10만원 ▷까꾸리웰빙손칼국수(이미숙) 10만원 ▷대구동양자동차운전전문학원(최우진) 10만원▷민들레봉사단 10만원 ▷삼보세라믹스(김익곤) 10만원 ▷신성산업(김용환) 10만원 ▷우리들한의원(박원경) 10만원 ▷혜민학원(조현모) 10만원 ▷(주)현대전산인쇄(이기복) 5만원 ▷건천제일약국 5만원 ▷기업이전호세무사 5만원 ▷베드로안경원 5만원 ▷봉란옥(이순자) 5만원 ▷수가성식당(최병기) 5만원 ▷우신 5만원 ▷임지연 세무사 5만원 ▷전피부과의원(전의식) 5만원 ▷채성기약국(채성기) 5만원 ▷칠곡한빛치과의원(김형섭) 5만원 ▷황금손부동산이현지 5만원▷(주)동신통신(김기원) 3만원 ▷보성카써비스(김영수) 3만원 ▷청산(우창하) 3만원 ▷대원전설(전홍영) 2만원 ▷투인(이지연) 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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