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문단에 발을 들여 놓았을 때였다. 인사차 방문한 등단한 문예지 주간이 힘주어 말한 것을 지금도 잊지 않고 있다. "시 쓰기 전에 먼저 사람이 되라!"는 말이었다. 앞으로 어떻게 시를 써야 되는 지도 몰랐던 나에게는 그 의미의 깊이가 남다르게 다가왔다. 그 말을 듣고 대답은 씩씩하게 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집에 돌아와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말 속엔 처신과 배려가 포함되어 있었다. 세상을 바라보는 몸가짐을 잘해야 된다는 것으로 받아 들였다.
올해가 등단 30주년을 맞는 해다. 과연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글을 써 왔는지 뒤돌아보면 아쉽고, 후회도 된다. 그동안 문단에 몸담으면서 많은 일들이 있어왔다. 그 중심에서 진정한 문인으로 살아왔는지에 대한 성찰이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육사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하면서도 시를 발표하고 수필과 평문 등 많은 글을 썼다. 그는 수필 '계절의 오행'에서 이렇게 밝혔다. "행동은 말이 아니고 나에게는 시를 생각한다는 것도 행동이 되는 까닭이오."
암울한 시대에 나라를 찾기 위해 목숨을 바친 이육사의 시적 정신은 몸으로 실천하는 것과 동일시했다. 행동과 시의 정신이 지향한 것은 결국 백성이었다. 나라를 뺏긴 백성들의 고된 삶을 해방시켜 주는 것이 글쓰기의 정신적 의미였을지도 모른다.
루마니아 작가인 게오르규의 소설 '25시'에서도 진정한 문인의 길이 어떤 모습인지 밝히고 있다. 소설 공간인 잠수함에선 승조원들의 생존을 위해 신선한 공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비상사태에 대비해 생각해낸 것이 토끼를 잠수함에 두는 것이다. 토끼는 내부 공기가 탁해지면 민감하게 반응한다. 산소가 부족하거나 압력에 이상이 생기면 토끼 귀의 혈관이 사람보다 먼저 파열되기 때문이었다.
어느날 잠수함에서 토끼가 죽었다. 잠수함 함장은 탁한 공기에 귀가 민감했던 게오르규를 토끼가 앉아 있던 그 자리에 앉혔다. 잠수함의 수병으로 근무했던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쓴 '25시'에서 게오르규는 문인들에게 한마디 했다. 문인의 사명이 '잠수함의 토끼'같은 존재라고 했다.
현실이라는 세계가 지닌 문제점들을 인식하고, 그것에 대비해서 사회에 경각심을 일깨워 주는 것이 진정한 문인의 길이라는 것이다. 사람이 먼저이면서 불의에 맞서는 행동과 정신은 일치해야 되며 솔직해야 되는 것이다. 문인의 길과 문학의 길은 같은 것 같지만 다르다. 인(人)과 학(學)이 보여주듯이 사람이 먼저고 그 다음이 학문이기 때문이다. 어떤 마음으로 어떤 자세로 문학을 하는가에 따라 문인의 길과 문학의 길도 달라 질 수 있다.
이육사나 게오르규가 실천한 정신과 행동이 하나가 되었을 때 진정한 문인의 길을 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시대에 정의롭지 못하거나 도리에 어긋나는 것을 보고도 침묵하거나, 공정하지 못한 일에 뒤로 물러나거나, 방관하는 것도 문인의 길이 아님을 가슴으로 새기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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