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 소멸 위기와 님비 시설

김태진 논설위원
김태진 논설위원

음식물 쓰레기를 잘 처리하는 건 분변 처리 못지않은 현대 행정의 숙제다. 10여 년 전부터는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자며 버린 양만큼 돈을 내게 한다. 마당이 있는, 개를 키우는 시골집은 음식물 쓰레기 처리를 개의 몫으로 뒀다. 잔반의 양이 적으면 일부러 밥 한 술씩 남기기도 했다. 아파트가 주거 형태의 대세가 되면서 잔반을 개에게 주는 집을 찾아보기 힘들다. 개의 입지가 사육하는 존재에서 공존하는 존재가 된 것도 이유겠지만, 잔반은 최소화해 처리 시설로 보내야 하는 것이라는 암묵적 동의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최근 포항시가 음식물류 폐기물 바이오가스화 시설 입지 후보지를 공개 모집했는데 5개 지역이 신청했다. 그중에서 죽장면 침곡리는 자원순환종합타운과 종합장사시설까지 한꺼번에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주민들의 전폭적인 동의가 있었다. 행정 당국 입장에서는 여간 반가운 게 아니다. '님비'(Not In My BackYard) 현상의 주범은 공공의 편의와 안녕을 위한 것이라지만, 생존권을 앞세운 반대 목소리 앞에 늘 죄인 처지였던 터다.

최종 입지로 선정되면 주민 편익 시설, 주민지원기금 등으로 20년 동안 최대 256억 원의 지원을 받는다. 지원금 지급이 완료될 20년 후 지역 사정이 어떻게 바뀔지는 미지수다. 그럼에도 죽장면 침곡리의 경우 21가구 35명의 주민 모두가 동의했다. 주민들은 "혐오 시설 반대에 따른 지역 갈등 해소에 기여하겠다. 사업 유치가 죽장 발전에 촉매제가 될 것이라는 대승적 결단으로 상생의 길을 찾고자 한다"라고 명시했다.

이들의 적극성은 존립에 대한 근원적 고민에서 나온 것으로 읽힌다. 죽장은 행정구역상 포항에 속하지만 청송 부남, 현동에 접한 곳이다. 포항의 변두리다. 비슷한 입지인 포항의 북서부 벨트 신광, 송라, 기북은 지난해 말 주민등록인구 기준으로 3천 명이 안 된다. 전국 면 단위 평균 인구가 3천 명 선이다. 4개 면 모두 평균에 미치지 못한다. 기북은 1천 명을 겨우 넘긴다(1천309명). 인구는 자본 논리를 충실히 반영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인구 3천 명이 안 되면 의료시설과 약국이 사라진다고 했다. 대구 편입으로 환호성을 질렀던 군위의 7개 면 중 6개 면이 3천 명 이하였다. 대구 편입에 군위가 전력을 다했던 이유다.

전국에서 인구가 1천 명이 되지 않는 면은 33개다. 철원 근북(102명) 같은 DMZ 인근이나 강화 서도(645명) 같은 일부 섬의 특수성 때문만은 아니다. 대한민국 한가운데 내륙 지역인 경북에도 있다. 상주 화남, 의성 신평, 의성 안사 등 3곳이 포함된다. 목포에서 2시간 동안 배를 타고 가야 하는 전남 신안 하의면의 인구가 1천660명이다. 경북 대표 도시로 꼽히던 상주가 2019년 인구 10만 명 선이 무너진 뒤 예삿일이 아니라고 판단한 건 호들갑이 아니다. 상주는 17개 면 중 8개 면의 인구가 2천 명이 안 된다.

포항 죽장의 혐오 시설 유치 노력을 현실적 시선으로 보게 된다. 한쪽에서는 생존권을 부르짖으며 혐오 시설 유치를 결사반대하지만, 다른 쪽에서는 소멸 위기를 넘기게 해줄 생존 시설로 환영받고 있는 것이다. 노인요양시설과 장례시설, 반려동물 화장시설 등도 마찬가지다. 현대화된 시설 유치로 세간의 발길을 당기고 있는 곳들도 생겨나고 있다. 수려한 자연 경관을 오로지 관광 자원으로만 묵혀두기도 어렵게 됐다. 절충안을 적극적으로 내놓아야 할 때가 성큼 와 있다.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