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 필수의료

이장훈 경북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
이장훈 경북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

지난해 7월 서울 대형병원 간호사가 근무 중 뇌출혈로 쓰러져 안타깝게 사망했다. 이 사건이 서울의 대형병원에서 발생했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고, 이를 통해 그동안 감추어져 있었던 우리나라 중증‧응급 환자에 대한 대응체계의 민낯이 드러나게 되었다. 이에 정부는 병원과 학회 등의 관련 단체와 수차례 회의를 갖고 지난해 12월 8일 '건강보험 지속가능성 제고 방안 및 필수의료 지원대책'을 발표하였다. 정부는 현재 필수의료의 현황을 ① 중증‧응급 환자에 대한 대응체계 미흡 ② 분만‧소아진료 기반 약화 ③ 필수의료분야 인력 부족 ④ 필수의료 적정보상의 한계로 진단하였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의 '필수의료 지원대책'의 핵심은 중증‧응급, 분만, 소아 환자에 우선 적용하여 이들 환자가 거주지 인근에서, 골든타임 내, 24시간‧365일 상시 필수의료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① '지역완결적 필수의료체계' 구축, ② 적정 보상 지급(공공정책수가), ③ 충분한 의료 인력 확보를 약속하였다. 하지만, 정부의 계획이 실효성이 있는지는 의문이 든다.

정부는 기대했던 '필수의료 지원 기금'과 같은 별도의 재원 마련 없이 건강보험 지출 효율화를 통한 지출 개혁으로 건강보험 재원을 절감하여 필수의료에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건강보험 지출 개혁을 위해 급여기준‧항목 재점검, 공정한 자격‧부과제도 운영, 합리적 의료이용 유도, 재정 누수 점검 및 비급여 관리를 예고하고 있어 또 다른 갈등의 불씨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지역완결적 필수의료체계' 구축을 위해 최종 진료를 책임지는 진료과의 책임진료기능, 관련 설비 등 규정에 따라 중증‧응급의료센터(50개), 일반응급의료센터, 24시간 진료센터로 응급의료전달체계를 개편할 예정이다. 이는 응급의학과가 아니라 실제 중증응급환자의 치료를 담당할 진료과의 최종 치료 제공 가능 여부에 따라 체계를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합리적인 결정으로 보인다. 하지만, 문제는 인력과 보상이다. 특히, 심혈관질환 중재시술 분야의 인력 부족은 심각한 수준이다. 심혈관질환은 응급환자가 발생 시 골든타임 내에 시술이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에 '시술팀'이 항상 대기 상태를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심장내과 안에서도 심혈관중재시술은 대표적인 기피 분야로 꼽힌다. 2019년 심장내과 전문의 1인당 응급진료 건수는 241건이고, 지역별로는 서울, 대구, 부산은 200건 이하지만, 충북, 전남, 충남은 500건 이상이다. 반면, 순환기내과 전임의 수는 꾸준히 감소하여 2022년 현재 전국에 49명에 불과하다. 그나마 심혈관중재시술을 전공하고자 하는 전임의 수는 절반이 되지 않는다. 이것은 현재 흉부외과 전공의 수 수준의 심각한 인력 감소가 발생한 것을 의미한다. 현재 대부분 종합병원에서 근무하는 순환기내과 의사는 과도한 업무 강도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지만, 젊은 순환기내과 의사들은 생활 및 교육 여건, 워라벨 등을 이유로 비응급, 비중증 환자 진료를 위한 병원 혹은 의원급으로 진로를 희망하고 있다. 이는 장기적으로 중증·응급의료를 담당할 순환기 전문의가 턱없이 부족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정부는 이런 인력 상황을 감안하여 정책 수가를 도입하고 응급가산료 인상 등의 보상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정부가 구성해야 할 중증 심뇌혈관질환 '응급전원협진망'을 치료하기에도 벅찬 전문의들끼리 알아서 자발적 네트워크를 구성하여 중증·응급환자 이송·전원까지 신속 연계하도록 요구도 하고 있다. 의료인이 중증필수의료에 종사하는 것이 '헌신'에 가까운 상황이 되어서는 현재의 응급의료체계는 존속이 불가능할 것이다. 과감한 정책 변화나 투자 없이, 현재 기준의 비용·효과성에만 중심을 둔 정책으로는 필수의료 인력의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정부는 형평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수준을 내세우고 있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곧 10년 이내에 절대적인 의료 인력 공급 부족으로 모든 역량을 인력 확보에 집중해야 할 상황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장훈 경북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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