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천 박씨 집성촌인 대구 달성군 하빈면 묘골마을
2023년 계묘년(癸卯年) 새해가 밝았다. 토끼는 다산(多産)과 지혜(知慧), 풍요(富)를 상징하는 동물이다. 이 기운을 받아 경제가 활성화되고 출산율이 높기를 기원한다. 달성군(達城郡) 하빈면(河濱面)에는 이러한 기운을 품고 있는 마을이 있다.

성인문과 육신사탑
묘리(竗里)는 사육신(死六臣)의 한 분인 순천 박씨(順天 朴氏) 취금헌(醉琴軒) 박팽년(朴彭年, 1417~1456) 선생의 후손 '박일산(朴一珊)'이 멸문지화(滅門之禍)의 순간을 넘기고 우여곡절 끝에 대를 잇고 정착한 순천 박씨 집성촌(集姓村)이다. 마을 전체가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니 외부에서는 안이 보이지 않는 지세이다. 토끼 굴을 연상하게 하는 특이한 지형이다. 이곳 순천 박씨를 일명 '묘골 박씨'라고 한다.
묘골 마을 이름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다. 마을 터가 묘(竗)해서 묘골이라고 했다는 설, 마을의 유래가 묘(妙)해서 묘한 동네라는 의미, 하빈사(河濱祠), 낙빈(洛濱), 육신사(六臣祠) 사당이 있어 사당 묘(廟) 자를 써서 묘골이라 했다는 것이다.

청룡방 상계 묘소와 달.묘골마을의 산세는 토끼형상이다.묘골 청룡방 산등성이에 오르면 검은 털을 가진 토끼가 달을 바라보는 형상이 눈에 들어온다.
◆검은 털을 가진 토끼가 달을 바라보는 형상
묘골을 풍수학적으로 규명(糾明)해 보자. 세간에서는 이곳 묘골을 회룡고조형(回龍顧祖形·용이 자신의 조상 산을 바라보는 혈) 또는 회룡고미혈(回龍顧尾穴·용이 머리를 돌려 자신의 꼬리를 바라보는 혈) 등으로 불리 오고 있으나 회룡과는 거리가 멀고 용형(龍形)은 더더욱 아니다.
용형으로 보려면 산세가 그에 걸맞아야 한다. 용은 신출귀몰하기 때문에 용맥의 움직임이 변화무쌍하여야 하고, 용의 행도(行度)가 금·수형(金·水形)으로 행룡(行龍) 하여야 한다. 하지만 이곳 산세는 용맥의 변화가 크게 없고, 사신사(四神砂)가 평평한 토성체(土星體)이다. 토끼나 소, 말 등 네발 달린 짐승의 등을 상징하는 것이 토성이다.
그럼 묘골의 산세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토끼 형상이다. 묘골 청룡방 산등성이에 오르면 검은 털을 가진 토끼가 달을 바라보는 형상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이 핵심 포인트이다. 토끼의 등에 해당하는 곳에 묘골 박씨 윗대의 묘소가 줄이어 있다. 겨울철 묘소 봉분 색깔이 희한하게도 새까맣다. 이곳 주혈의 좌향은 계좌 정향(癸坐 丁向)이다. 별자리 오행으로 토성이며, 풍수 물형으로 보면 옥토망월형(玉兎望月形)이다.
동양철학에서 계(癸)는 수(水), 토끼 묘(卯)는 나무(木), 정(丁)은 달로 해석을 할 수 있는데 이것을 종합해 보면 동요<반달>에 나오는 '달 속의 토끼와 계수나무'가 그려진다.
따라서 묘골의 당초 이름은 토끼 '묘(卯)' 자를 써서 묘골(卯谷)이라 했을 것이나 마을 터가 특이하고 거기에 사육신과 같은 역사적 사건을 결부시켜 의미를 부여하다 보니 묘할 '묘(竗)' 자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근대에 들어 묘골이 배출한 대표적인 인물은 3번의 국회의장과 9선의 국회의원을 박준규 전 국회의장.송산 박준규 전 국회의장 생가 표지석과 우물.
◆9선의 국회의원을 역임한 송산(松山) 박준규
지가서(地家書)에서 토끼 형은 "자손이 번창하고, 지혜로운 인재를 배출하며, 부자가 출한다"라고 한다. 실제로 후손들도 번성하였고, 큰 부자와 인물도 배출하였다. 형상으로 보면 조산(朝山) 천마사(天馬砂)가 있으니 이따금씩 큰 귀인(貴人)이 배출될 것을 예견하고 있다. 수려한 사격 하나가 그 역량을 발함이 정말로 지대하다.
근대(近代)에 들어 묘골이 배출한 대표적인 인물은 3번의 국회의장과 9선의 국회의원을 역임한 송산(松山) 박준규(朴浚圭, 1925~2014)가 있고, 부자로는 삼성(三星) 창업주 이병철(李秉喆, 1910∼1987) 회장의 배우자 박두을(朴杜乙, 1907~2000) 여사가 이곳의 지기를 받고 태어났다.
송산은 대한민국 정계에서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 김종필(金鍾泌) 전 국무총리와 함께 최다선(最多選) 의원이며, 13~15대 국회에서는 잇달아 세 차례 국회의장을 역임했다. 지역구 9선과 세 번의 국회의장은 한국 의정 사상 초유(初有)의 기록이다.
그는 일제강점기 구마모토 의과대학 재학 중 8.15 광복을 맞아 귀국하여 서울대학교에 편입한 후 문리과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하였다. 미국에 유학하여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는 등 한·미·일 3국의 대학에서 공부하면서 자유, 민주, 실용을 몸소 체험했다. 이러한 경험이 독재(獨裁)와 산업구조 고도화라는 가치가 상충하던 시대에 공화당 정책위의장을 맡아 싱크탱크 역할을 한 지역의 거물 정치인이었다.
숭정사(崇正祠) 앞에는 송산의 생가 터임을 알리는 표지석과 우물이 있다. 생가 터에서 보면 천마사가 뚜렷하게 보인다. 송산은 이 천마사의 기운을 많이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사육신 박팽년의 직계 18대손이고 박두을의 5촌 당질(堂姪)이다.

삼성 이병철 회장 부인 박두을여사 생가터.
◆삼성 이병철 회장 부인 박두을 여사
박두을은 아버지 박기동의 4녀로 태어났다. 유년시절 여사의 관상을 본 한 스님이 "왕비가 아니면 거부의 아내가 될 것이다"라고 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여사는 21세에 집안 어른들의 주선으로 이병철과 혼인한다. 이 회장의 집안도 경남(慶南) 의령(宜寧) 일대에서 알아주는 부잣집임에도 불구하고 "시집이라고 왔더니 집도 좁고 그렇게 가난해 보일 수 없었다"라는 말을 자식들에게 자주 했었다고 한다. 이를 보면 친정집이 얼마나 부자인지 가늠할 수 있다. 친정 생가터는 마을 중심맥의 말락지(末落地)에 있는 양택지로 부자 터이다.
이병철 회장이 1938년 '삼성상회'라는 간판을 걸고 대구 서문시장 인근에서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처가와 연관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성공 신화를 만든 원천은 송산의 부친 취운(醉雲) 박노익(朴魯益, 1888~1958)이 운영하는 양조사(釀造社)를 인수한 덕분이다. 이것이 큰 밑천이 되었다.
삼성이 재벌로 성장하기까지는 박두을 여사의 공이 지대하다. 박 여사는 "바깥 활동은 되도록 삼가고 집안일에만 전심전력을 다해 왔으며, 예의범절에 밝아 집안이 두루 화목하였고, 몸치장, 얼굴 치장 한번 제대로 한 적이 없을 정도로 검소하였다"라고 한다. 훌륭한 내조 덕분이라는 칭송이 늘 따라다닌다.
이렇듯 묘골의 출신 인물을 보면 지가서에서 말하는 토끼형의 발응과 일치하며, '인걸(人傑)은 지령(地靈)'임이 증명된다. 묘골은 생기가 모이고 앞과 뒤가 안온하게 생긴 부자 터로, 영구한 양택지로 삼기에 부족함이 없는 곳이다. 어떻게 이런 자리와 인연이 되었을까? 참으로 묘하다.

노인영 문강풍수지리연구소 원장
노인영 풍수가·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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