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유레카!

차홍길 아양아트센터 전시기획팀 주임

차홍길 아양아트센터 전시기획팀 주임
차홍길 아양아트센터 전시기획팀 주임

고등학교 입학 후 마음 맞는 친구들과 함께 댄스 동아리를 만들었다. 수업이 끝나면 떡볶이와 김말이 몇 개를 주워 먹곤 동아리실에 모여 머리를 맞대고 춤에 대해 연구했다.

학교 축제를 준비하는 날이면 동아리실 연습이 끝난 후에도 야간 공원의 농구장 조명 아래에서 CD 카세트 하나를 틀고 늦은 새벽까지 연습에 매진했다. 세상이 거꾸로 보이고, 맨바닥에 살이 쓸려 타는 듯한 고통에도 금세 웃고 떠들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친구들과 함께했던 그 시간들이 그저 좋았다.

하지만 입시를 앞둔 고등학생에게 성과 없는 즐거움은 그리 길게 허용되지 않았다. 당시 춤에 대한 사회적 인식 역시 좋은 편이 아니었다. 불확실한 직업군과 '딴따라'라는 부정적 수식어가 뒤따랐고 대학입시와 춤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우리의 활동은 중단됐다. 동아리실의 문 역시 굳게 잠겼다.

10여 년의 시간이 흘러 현재 춤은 하나의 문화로 인정받게 됐다. '딴따라'라는 부정적 인식을 탈피하고 하나의 예술 장르로 자리매김을 한 것이다. 2004년 우리나라는 브레이크 댄스 국제 대회 'Battle of the Year'에서 우승을 거머쥐었다. 이것을 시작으로 비보이(b-boy) 강대국이라는 칭호를 얻고, 이러한 흐름에 힘입어 연이어 각종 해외 경연 대회에서 우승을 하며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제 춤은 관객이 열광하고 갈망하는 하나의 예술로 자리 잡았다. 2021년 화제가 된 TV 프로그램 '스트릿 우먼 파이터', 연이어 방영되며 인기를 끈 '스트릿 맨 파이터' 등 춤과 관련된 프로그램이 대중의 호응을 얻고 있다. 사람들이 이 문화에 이토록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손과 발이 하나의 붓이 되어 무대라는 캔버스 위에 그림을 그리듯 자유로이 움직인다. 춤이라는 문화에 기술은 있을지라도 정답은 없다. 예술의 넓은 포용력 안에서 음악에 따라 마음이 가는 방향대로, 무의식적으로 신체를 가누다 보면 하나의 무대가 완성된다. 나의 신체를 직접적으로 활용하는 자유로운 예술적 특징 때문일까, 이제 춤은 10대, 20대 사이에서도 자신의 매력을 발산하는 방법으로 흔히 사용되고 있다. 나아가 춤이라는 단일 장르를 넘어서 타 장르와 혼합되어 퍼포먼스 및 신체 예술 등 복합적인 문화로 재창조되기도 한다.

춤이라는 문화가 수면 위로 떠올랐을 때, 나는 시간을 거슬러 추억을 여행하며 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렸다. 그 시절 춤에 쏟았던 열정과 시간을 교과서 속 글자들에 쏟았더라면, 나는 지금 더 좋은 대학의 출신이거나 사회적으로 더 나은 지위를 가졌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몇 번이고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고 해도 나는 교실보다 연습실을, 공부보다 춤을 선택할 것 같다. 애정하는 일에 열정을 쏟았던 시간들은 나를 다방면으로 성장하게 한 밑거름이 됐다.

가끔 사람들은 좇아야 하는 목표만을 목 빠지게 바라보는 나날들 속에서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것을 해야 하는지 잊는 것 같다. 정해놓은 길을 따라 열심히 살다 보면 어느새 나는 사라지고 목표만이 남기 마련이다. 새삼 갖은 다짐들을 하게 되는 새해를 핑계 삼아 가야 하는 길 대신 가고 싶은 길에 대한 진심을 찾길 바라며 소중했던 나의 고등학교 시절 댄스 동아리의 이름을 외쳐본다. 유레카(eure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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