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짓값이 떨어졌다고 못 그만두지,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이라고 생각하니까."
지난 6일 오후 4시쯤 대구 서구 원대동 한 고물상 바닥에 매립된 대형저울이 A(71) 씨가 모아온 폐지 더미를 207㎏으로 측정했다. 고물상은 폐지 1kg당 70원으로 계산해 A씨에게 1만5천원을 건넸다.
돈을 받아든 A씨의 장갑은 검은 때가 타 새까맸다. A씨가 이날 집을 나선 시간은 새벽 5시. 장장 11시간을 일해 점심도 빵으로 때우면서 번 돈은 1만5천원이었다. 시급으로 따지면 1천300원인 셈이다.
그나마 이날은 수레에 고철과 책이 섞여 있어 가격을 더 받은 '운수 좋은 날'이었다. A씨는 "예전에는 이렇게 가져오면 2만원은 넘게 받았다"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장시간 고된 노동…위험천만한 도로 위
A씨는 항상 오전 5시면 집을 나선다. 전날 모아둔 폐지나 플라스틱, 고철 등을 수레에 실은 뒤 서문시장 등 중구 일대를 쉼 없이 누빈다. 더 이상 쌓을 수 없을 만큼 수레를 채우고 나서야 그는 서구 원대동에 있는 고물상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폐지 수집 중에는 항상 위험에 노출돼 있다. 취재진이 A씨와 동행하는 사이에도 위험천만한 상황이 이어졌다. 도로 갓길로 다니는 그의 어깨 너머로 자동차 경적이 수차례 울렸다. 내리막길이 나오면 그는 수레를 반대방향으로 돌려 밀면서 이동했다. 100~200kg에 달하는 무게 때문에 자칫하면 몸이 앞으로 쏠려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자전거를 타면서 폐지를 줍는 사람들은 종종 앞으로 고꾸라지기도 한다"며 "한 번 다치면 병원비는 물론이고, 일을 할 수 없으니 항상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갓길과 횡단보도를 넘나들기를 수차례, A씨는 집에서 나선 지 자그마치 11시간 만에 고물상에 도착했다.
A씨가 더우나 추우나 폐지를 수집한 지는 벌써 10년째다. 하루 1만원, 일주일에 6일을 일하면 한 달에 손에 쥐는 돈은 30만~40만원 남짓이다. 그런데 최근 물가가 너무 올라 생활은 급격히 힘들어졌다. 그는 "너무 힘들게 번 돈이라 막상 쓰려면 아깝다. 요즘 물가도 많이 올라서 국수 한 그릇 먹기도 버겁다"고 토로했다.
◆폐짓값 폭락에 재고만 쌓인다
2023년 새해, 폐지 수집 노인들이 어느 때보다 춥고 힘든 겨울을 보내고 있다. 경기 침체로 종이 수요가 급감하면서 폐짓값이 폭락했기 때문이다. 2020년 3월 ㎏당 55.6원으로 최저치를 찍은 폐짓값은 지난 2021년 12월 ㎏당 153원까지 올랐으나 이후 꾸준히 하락해 지난해 말 기준 84원으로 반토막이 났다.
폐짓값 폭락의 여파로 압축장과 제지공장에도 폐지가 쌓이고 있다.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기준 국내 제지회사의 폐지 재고량은 14만4천t에 이른다. 폐지 재고는 지난 2021년 평균 10만1천톤(t)이었으나 지난해 6월 19만2천t까지 상승했다.
폐지가 산더미처럼 쌓이자 환경부는 지난해 10월부터 경기 양주와 안성, 대구 등 전국 6곳의 공공 비축창고에 옮겨 재고량을 줄였다. 그러나 지난해 연말 폐지 재고량은 다시 20t까지 늘었다.
업계는 폐짓값 하락세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전망한다. 글로벌 경기침체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이고, 새학기와 이사철이 쏠린 봄에는 폐지 공급이 더욱 늘기 때문이다. 중구 한 고물상 업주는 "일주일에 2~3번 정도 압축장에 폐지를 넘기는데 거기서도 재고가 너무 많다고 양이나 횟수를 제한한다"며 "폐지는 1㎏당 마진이 10~20원밖에 안 된다. 그렇다고 어렵게 수집해 온 분들을 돌려보낼 수도 없다"고 토로했다.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마땅한 대책도 내놓기 어려워 폐지 줍는 노인들의 시름은 더욱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대구시 자원순환과 관계자는 "폐짓값은 경기 상황과 시장 수요라는 큰 틀에서 움직이다 보니 지자체 차원에서 획기적인 대책을 내놓기는 어려운 측면이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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