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도의 10대 천재 소년 아비냐 아난드(Abhigya Anand). 지난 2019년 중국에서 시작된 코로나19를 예언해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아비냐 아난드보다 9년 빨리 '코로나19'를 예언한 한국 작가가 있다. '재와 빨강'을 펴낸 편혜영 작가.
편 작가의 첫 장편소설인 '재와 빨강'은 지난 2010년에 처음 쓰였다. 13년 전 작가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발열과 기침으로 서서히 퍼져나가는 팬데믹, 격리와 거리두기를 통해 사람들 사이 불신이 팽배해지는 상황을 그렸는데 지금의 현실과 똑 닮아있다. 마치 코로나19 발병 이후 나온 이야기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놀랍도록 비슷하다.
'재와 빨강'이 창비 리마스터 소설선으로 다시 출간됐다. 편혜영 작가는 리마스터판 출간을 위해 모든 문장을 새롭게 고쳐 썼는데 이로 작품의 시의성과 현재성이 한층 살아났다.
스토리부터 살펴보자. 제약회사에서 약품개발원으로 근무하는 주인공은 C국으로 파견근무를 발령받고 떠난다. 회사 동료들의 온갖 질시를 받으며. 파견근무를 탐탁치 못하는 동료들의 시기로부터 벗어나고자 주인공은 출국을 간절히 원한다. 하지만 정작 도착한 C국엔 감기와 유사한 전염병이 창궐 중이다. 전염병으로 도시 전체가 마비된 상태고 길에는 쓰레기가 넘쳐난다.
주인공은 출근 명령을 기다려보지만 담당자는 좀처럼 연락이 없다. 그러다 문득 본국의 집에 홀로 남겨둔 개가 생각나 전처와 재혼했다 이혼한 동창생 '유진'에게 개를 풀어놔달라고 연락한다. 하지만 뜻밖의 소식이 전해진다. 유진이 주인공의 집에 갔더니 칼에 찔려 죽은 개와 전처 시신이 있더란다.
상황은 뒤바뀐다. 자신의 집 근처 쓰레기장에서 주인공의 지문이 묻은 칼이 발견됐다는 뉴스가 일파만파 퍼지면서 주인공은 유력 살인 용의자가 된다. 그때 C국 자신의 숙소에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데…. 주인공은 창밖 쓰레기 더미로 몸을 날려 도망치고 결국 쓰레기더미를 뒤지며 생활하는 거리의 부랑자 신세가 된다.
생에 대한 열망이 파국을 부른다. 열심히 살려는 욕망이 오히려 인간의 생존 조건을 박탈시키는 아이러니를 작가는 말하고 있다.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위해 작가는 '쥐'라는 장치를 가져온다. 전염병과 쥐라니. 마치 카뮈의 '페스트'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페스트의 시작이 쥐였고, 전염병으로 인해 인간의 가치가 사라져간다고 말하는 카뮈처럼 편 작가의 이야기도 비슷하다.
소설 후반, 부랑자 신세가 된 주인공은 하수구에서 살아가며 '쥐'를 잡는 일을 한다. 그는 스스로 마치 쥐가 된 느낌을 받는데 쥐를 죽일 때 '쥐'가 아닌 '인간'이라는 생존의 느낌을 받는다. 다른 어떤 생명을 파멸시킴으로 '살아있다'라는 감각을 얻게 되는 것. 인간이라는 존재의 소멸을 막고자하는 주인공의 발버둥은 그로테스크 그 자체다.
결국 작가는 그 과정에서 남겨지는 인간의 고독을 말한다. 극단적 상황에서 인간이 맞닥뜨리는 절대 고독. 전염병으로 인한 일상의 사소한 부분이 사라졌을 뿐인데 인간성 상실이라는 극적인 방향으로 삶이 흘러간다는 메시지가 섬뜩하다. '재와 빨강'은 심도 있는 인간에 대한 고찰 소설인 동시에 현대사회와 문명을 돌아보게 한다. 어쩌면 편 작가의 상상은 이미 현실로 나가왔을지 모른다.
작가의 말이다.
"삶을 폐허로 만드는 것은 역병과 쓰레기, 끊임없이 출몰하는 쥐떼가 아니라 적나라한 혐오와 차별, 정교한 자본주의임이 명백해졌다" 240쪽, 1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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