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청라언덕] 숨을 곳이 있어야 아이가 태어난다

서울 시내 부동산중개업소 모습. 연합뉴스
서울 시내 부동산중개업소 모습. 연합뉴스
김봄이 디지털뉴스국 차장
김봄이 디지털뉴스국 차장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이 꺼낸 저출산 대책으로 시끌하다. 결혼하면 초저금리로 2억 원 정도를 주택자금으로 빌려주고 첫째 아이를 낳으면 이자 삭감, 둘째 출산 시 원금의 일부를 탕감해 주는 방식이다. 헝가리의 저출산 해법에서 따온 이 대책에 말들은 많지만, 그만큼 다급한 상황이다 싶다.

우리나라의 저출산은 심각한 수준까지 왔다. 한 달에 태어나는 아이가 2만 명도 되지 않는다. 10년 사이 출생아 수는 절반으로 감소했다.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현황에 따르면 2022년 12월 출생 등록이 1만8천511건이었다. 지난 6월 2만 명대 아래로 떨어진 후 1만9천 명대까지 붕괴된 것이다. 연도 출생아 수는 2012년 48만5천여 명에서 2021년 26만2천여 명으로 급감했다.

#정부는 부동산 규제 완화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지난해 말과 올해 초에 걸쳐 재건축, 세금, 대출, 분양 등 전방위 부동산 규제 완화책을 하루가 멀다 하고 발표하고 있다. '빚내서 집 사라 시즌2'라는 말이 나올 정도의 규제 완화 폭탄이다.

하지만 정작 무주택자들은 '빚내도 집 못 산다'며 울상이다. 몇 년 사이 범접할 수 없는 수준으로 오른 부동산에 하락했다는 가격도 여전히 비싸고, 규제 완화도 온통 다주택자, 고소득자 등 '있는 자' 위주의 대책이다.

저출산의 배경 중에 부동산이 있다. 내 집 없이 아이를 낳고 기르는 건 부모들에게 퍽 서글픈 일이다. 전세 만기로 인해 2년마다 이사를 가야 할지도 모르고, 아이가 벽에 그림이라도 그릴라치면 '훌륭한 작품'이라 칭찬은 할 수 없다.

실제로 집값은 출산율과 밀접한 영향이 있다.

최근 국토연구원이 공개한 '주택가격 상승이 출산율 하락에 미치는 연구'에 따르면, 집값이 1% 상승하면 합계출산율이 약 0.002명 감소했다. 상승 영향은 최장 7년까지 이어져 합계출산율이 약 0.014명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합계 출산율은 한 여성이 가임기간(15~49세)에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로 2021년 기준 0.81명이었다. 게다가 주택 가격 충격에 따른 출산율 하락은 점차 빨라지고 있다. 1990년대에는 10개월 이상 시차를 두고 출산율이 떨어졌지만, 2010년대 중반 이후 1~2개월 이내에 출산율이 하락했다.

주택을 소유한 경우 상대적으로 출산율이 높다는 통계도 있다. 2021년 결혼 5년 이내인 신혼부부 110만1천 쌍 중 주택을 소유한 부부의 유자녀 비중은 59.9%로 무주택 부부(50.1%)보다 9.8%포인트나 높았다. 주택을 소유한 부부의 평균 자녀 수(0.73명) 역시 무주택 부부(0.60명)보다 0.13명이나 많았다.

부동산 하나로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겠지만, 전방위적 노력이 필요한 '위급 상황'이다. 당장의 급락을 막기 위한 규제 완화 폭탄이 아닌 멀리 내다보고 실거주자들을 위한 견실한 대책이 필요하다.

생태학자인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1년 전쯤 유튜브 채널을 통해 "한국에서 애 낳으면 바보다. 머리가 얼마나 나쁘면. IQ가 두 자리가 안 되길래 애를 낳는 거겠죠?"라며 논란이 될 만한 발언을 했다. 그의 발언은 아이 낳기 힘든 우리나라 환경에 대한 역설이었다. 최 교수는 "진화생물학자가 보기에는 한국 사회의 저출산 현상은 지극히 당연한 진화적 적응 현상"이라며 "주변에 먹을 것이 없고 숨을 곳이 없는데 거기서 애를 막 낳아 주체를 못 하는 동물은 진화 과정에서 살아남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숨을 곳이 있는 환경이라야 아이도 태어난다.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