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실천하는 양심

김태진 논설위원
김태진 논설위원

"모네의 '인상, 해돋이'는 제목 그대로 인상적인 쓰레기다. 오히려 그림이 걸린 벽지가 더 고풍스럽다. 차라리 벽지에 대해 감상평을 쓰고 싶다."

클로드 모네는 인상파의 아버지라 불린다. 그러나 그가 데뷔하던 당시 화단의 평은 박했다. 위의 비평이 대표적이다. 새로운 화풍은 이질적이기 마련이다. 실제 풍경과 인상을 과감하게 표현했으니 곱게 보일 리 없었다.

화가라고 명함을 내밀려면 입선이 조건이었는데 살롱전에 입선하는 건 하늘의 별 따기. 설상가상 심사는 원로들의 몫이었다. 그러자 모네와 친구들은 살롱전을 포기하는 대신 전시회를 연다. 이마저도 조롱의 대상이 됐다. 살롱전에 떨어진 화가들이었으니 대놓고 깔본 것이었다.

새해가 되면 유력 일간지들이 발표하는 신춘문예 당선작을 살핀다. 최근 들어서는 SF 장르소설이라 분류되던 작품이 당선되기도 했고, 웹소설 작가가 도전해 당선되기도 했다. 몇 년 전이었다면 예심에서 탈락했을 작품일지 모른다. 소재나 형식의 장벽이 허물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모네의 시련과 신춘문예 낙선자들이 겹친다. 동네 서점에서 만난 독특한 독립출판물 중에는 '신춘문예 낙선 작품 모음집'이라는 책이 있다. 작가가 자비로 출간한 작품이다. 호러물, 판타지물 등 장르물도 적잖다. 신춘문예를 통하지 않고서도 독자의 눈길을 잡겠다 싶은 수작도 있다.

성추행 의혹으로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시인이 낸 시집에 문단이 시끄럽다. 어떤 입장 표명 없이 태연히 복귀작을 낸 회복력이 부럽다는 소수 의견도 있지만 철면피라는 악담이 다수다.

파장에 아랑곳하지 않고 시집을 펴낸 출판사도 입길에 올랐다. 그의 성추행 의혹을 폭로했던 시인은 "위선을 실천하는 문학"이라는 짧은 글을 SNS에 남겼다. "그의 시력(詩歷)은… 서정적인 시이고 그다음은 현실 참여에 관계되는 시이다"라는 출판사 서평을 마주한다. 시대정신을 제대로 읽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자비로 출간하는 문청들에게 열린 문이 있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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