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타협, 양보, 상대방 존중

한경수 이전한방연구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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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인생 후반부에 한의학 박사를 취득했지만 본래 정치학 학사와 석사를 먼저 취득한 전공자다. 한의학 발전에 애쓰고 있으면서도 요즘 우리나라의 정치 현실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무엇보다 타협과 양보라는 두 가지 틀이 실종된 현실 때문이다.

타협(妥協)은 무엇인가? 타협은 그저 적당한 선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다. 타협의 '타'(妥)는 온당하다 합당하다는 뜻이니, 서로 의견이 일치하지 않을 때 온당하게 합당하게 협의하여 합의(協)하는 것이다. 부당하거나 이치에 맞지 않게 합의하는 것이 아니다.

양보(讓步)는 걸음을 물러나 상대방에게 길을 내어주는 것이니 내가 그 길을 가면 유리한데도 남에게 그 길을 내어주는 것이다. 왜 민주주의에서는 양보를 중시하는 걸까. 서로 다른 의견이 있을 때 타협을 하려면 한 걸음씩 물러서는 양보의 마음이 전제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개인이나 정당은 각자가 가지고 있는 신념이나 가치관이 다르다는 것이 민주주의의 전제인데 이들이 어떤 결정의 합의에 이르려면 한 걸음씩 물러나지 않으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타협과 양보와 함께 필요한 것은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다. 상대방을 깔보거나 무시하면 타협과 양보는 이루어지기 어렵다. 정치적 신념이나 추구하는 가치가 다르다고 해서 상대방을 격하시키면 더 이상 관계 형성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민주주의가 성공하려면 정치적 상대방을 존중하는 틀 아래에서 타협과 양보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타협과 양보, 존중의 개념이 부족하거나 실제로 실천해 본 경험이 부족한 정치인들이 많으면 정치는 극단적인 대립과 고성(高聲)이 오가게 된다. 우리나라 국회에서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타협과 양보의 자세는 사람마다 성장 환경이나 직업에 따라서 영향을 받기도 한다.

어릴 때부터 모든 것을 풍족하게 누리며 성장하는 아이들은 가정 내에서 타협과 양보를 경험할 기회가 부족하다. 여러 형제와 자매들이 함께 성장하는 가정에서는 형제자매들과 공존하는 과정에서 타협과 양보를 자연스럽게 배우게 된다. 양쪽이 모두 합당한 이유로 한발씩 물러나는 것이다.

직업적으로 보자면 법조인, 의사, 교수, 군인 등은 상대방과의 타협과 양보가 별로 필요하지 않다. 거의 일방적인 의사결정과 행동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독점적인 기술, 지식, 위력 등을 소유하고 있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목적하는 바를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직업군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자기 분야의 벽을 넘어서 다른 세계를 보려고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조금만 자기 벽을 넘어 보면 거기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잘 알지 못한다. 이런 계통의 사람들이 정치활동을 하게 되면 정치판이 순조롭게 돌아가기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

정치권은 추구하는 신념과 가치관이 날카롭게 부딪치는 현장이고, 때론 어떤 선택이 어느 한편의 존망을 결정할 수도 있다. 이런 정치 세계야말로 타협과 양보가 없이는 앞으로 나가기 어렵다. 그런데도 자기 주장만이 옳고 남의 의견은 옳고 그름에 관계없이 무시하거나 폄하해 버리는 행태를 보이면서 '절대로' '결코' 등 단정적인 표현을 사용하며 물러서지 않는 모습이 익숙하다.

선거 때마다 늘 '큰 바위 얼굴'을 기대하다가 역시나 하고 실망하게 된 경험이 적지 않다. 그 얼굴이 그 얼굴이기 때문이다. 대단한 수재나 영웅보다는 부모와 형제자매의 사랑이 충만한 가정에서 타협, 양보, 상대방 존중을 경험한 큰 바위 얼굴과 같은 큰 정치인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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