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우리에게 소중한 ‘ㅇㅇ세권’

배원 첼리스트

배원 첼리스트
배원 첼리스트

서점을 둘러보다 하얀 헝겊 표지에 초록색 새가 그려진 책이 눈에 띄어 집어들었다. 시미언 피즈 체니의 '야생 숲의 노트'라는 책이었는데 무려 200년 전, 1800년대 미국 뉴 잉글랜드의 한 무명 음악가가 남긴 특별한 기록을 다듬어낸 책이다.

그는 숲 속에 집을 짓고 자연의 소리에 깊이 귀기울였다. 계절이나 환경이 변함에 따라 달라지는 새소리를 관찰하며 지저귀는 노랫소리를 오선지로 옮겼고 각각의 새가 가진 소리의 특징, 음색, 뉘앙스, 새가 목을 풀 때의 우스운 습관까지 시적이고 위트 있는 표현으로 담아냈다. 철 따른 새들의 여정과 함께한 그의 순수한 기록은 천진난만한 한 권의 동화를 읽는 듯하다.

자연의 소리를 악보로 기보 하다니! 신선한 발상이다.

자연스레 자연을 거닐며 영감을 받아써낸 작곡가들의 작품이 떠올려졌다. 올리비에 메시앙의 77종의 새 소리를 담은 '새의 카탈로그'는 앞서 소개한 시미언의 '새의 소리 조각'들을 연상케 한다. 베토벤의 '전원 교향곡'은 대자연이 선사한 위로와 선물을 감사와 사랑이 내재된 음악으로 보답하는 듯하며, 브람스의 가곡 'Wir wandelten'(우리는 함께 거닐었네)는 누군가와 조용히 산책하며 느끼는 아름답고 서정적인 감성이 담겨있다.

우리는 오늘날 역세권이라는 신조어가 탄생함으로 파생된 학세권, 슬세권, 행세권, 뷰세권, 맥세권 등 자신의 주변에 가까이 두고 싶은 합리적인 세권을 찾는다. 이는 현대적인 것, 합리적인 것, 편리한 것, 빠름을 위한 것들 이다 보니 정작 조금 느리더라도 사람이 가까이하면 좋고 소중한 것에 대해서는 멀리했다. 하지만 근래에 들어 팍세권, 숲세권 등의 등장에서 보듯이 점차 사람이 자연 가까이에서 얻을 수 있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사계절마다 걸맞은 색채로 물들여지고 나뭇가지 끝은 맑고 청명한 하늘을 향해 뻗어 있으며 담쟁이를 신나게 뛰어 넘으며 느긋하게 햇볕을 쬐는 길고양이들의 한가로움, 동틀 때 지저귀는 얼리버드(early bird)의 소리 등 우리의 감성을 노크하는 자연 속 풍경들.

지금 우리는 일상의 숨 가쁨을 환기할 막간의 쉼표가 간절하다. 햇살, 바람, 온기를 머금은 자연과 너르게 쏟아지는 햇볕을 느끼는 시간은 감각의 고리를 열게 한다.

소생의 힘을 가진 자연이 주는 에너지와 함께함은 우리의 마음을 위로한다. 해내야 하는 일 더미 속에 한 템포 쉬어가는 산책길 같은 시간은 신선한 발상을 만들고 자유함 속에 좋은 것들을 발견하게 한다.

꽉 찬 머릿속을 비워내고 평온을 선사할 나의 곁에 가까이 두어야 할 'ㅇㅇ세권'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그 볕 아래 새의 지저귐 처럼 자연을 오랜 시간 다듬은, 오래 담은 그런 느린 음악이 있는 곳에서 쉼과 행복을 찾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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