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어머니의 품속을 다녀왔다

이위발 이육사문학관 사무국장

이위발 이육사문학관 사무국장
이위발 이육사문학관 사무국장

며칠 전 고향을 다녀왔다. 설렘과 두근거림이 덜한 것은 세월 탓이라고 하더라도, 고향은 늘 평온하고 푸근했다. 그래서 그런지 고향을 '어머니 품속' 같다고 한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정지용 시인의 '고향'이란 시의 마지막 연이다. 이 시는 화자가 고향에 대해 상실감을 표현하고 있지만 자신의 정서와 인식의 변화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시다.

고향은 과거가 있는 곳이며, 뿌리 내려있는 정든 곳이며, 마음속에 형성된 하나의 근원적 세계다. 고향은 공간, 시간, 마음, 이 세 가지가 합쳐진 복합된 원초적 샘이다. 여기에서 어느 쪽이 더 치우치는가는 선택할 수 없다. 어머니 뱃속에서의 탄생과 지정학적인 태어남이 고향이다. 하지만 태어난 시간과 공간이 같기에 어머니와 고향을 동일시하고 있다. 고향은 다른 의미에서 용서와 화해와 사랑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인간은 태어나서 자기 결핍을 시인하고 일상으로부터 자기 해방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러나 고향은 고향을 떠남으로써 고향이 보인다는 역설도 있다. 고향은 태어나기 전인 모태 이전을 고향이라고도 한다. 누군가 죽는다는 것도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부모님의 등살에 서울로 유학을 가야만 했다. 방학이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기차 타고 버스 타고 그리운 고향집이 가까워지면 목청껏 엄마를 불렀다. 어머니는 신발을 거꾸로 신고 나와 덥석 안고는 볼을 비볐다. 눈엔 눈물을 글썽이며 "아이고~내 새끼" 했다.

루쉰의 단편소설 '고향'에서도 도시에 나가 있던 주인공이 어머니가 살고 있는 고향을 이십 년 만에 찾아온다. 그 아들을 "어머니는 쫓아 나와 마중을 했다"는 표현이 있다.

시공간은 다르지만 객지에 나가 있는 자식들을 맞이하는 풍경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다. 다만 핸드폰으로 주고받는 소통이 있다 보니 행동은 달라도 마음은 바뀌지 않는 것 같다.

"고향이 통 없어졌더마. 집도 없고 사람도 없고, 개 한 마리도 얼씬을 않더마."

대구 출신인 현진건의 '고향'이란 소설 속에 나오는 문장이다. 이 소설은 암울한 일제강점기 때 일제의 수탈로 황폐해진 농촌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기차 안에서 우연히 알게 된 한 인물의 인생역정을 통해 당시 농촌이 어떻게 파괴되었는지, 식민지 현실이 개인의 삶을 얼마나 짓밟았는지를 사실적으로 그린 소설이다.

다들 떠나고 없는 황량한 고향이지만 타향에서 고향 이야기만 나오면 들떠서 열변을 토하기도 한다. 고향이란 보상 없이 주는 증여와 환대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꿈을 꾸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설날이 다가온다. 꿈에도 잊히지 않는 고향, 어머니의 품에서 잠시나마 평온함을 누리고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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