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칼럼] 문화, 가상, 그리고 익숙함

전창훈 문화체육부장

전창훈 문화체육부장
전창훈 문화체육부장

보마(VOMA·www.voma.space)에 접속했다. 탁 트인 풍광과 함께 미학적인 건축물이 눈에 들어온다. 미술관이다. 옆으로 강이 흐르고 분수가 보인다. 분수 옆 하얀 작은 원을 클릭하자 물소리가 들려온다. 미술관으로 들어서면 다양한 그림이 전시돼 있다. 곳곳에 있는 작은 원을 활용해 각 그림을 확대하거나 설명과 함께 감상할 수 있다. 또 마우스를 움직이면서 입체적으로 건물 내·외관을 자유자재로 볼 수 있다.

보마는 지난 2020년 9월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일 때 개관했다. 세계 최초의 100% 가상현실(VR) 미술관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기존 미술관 홈페이지에 VR 전시를 부가적으로 제공하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가상이지만 미술관을 홀로 관람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대구에서도 조만간 이와 비슷한 형태의 미술관을 개관한다. 수성아트피아가 지역에선 처음으로 가상 미술관 개관을 준비하고 있다. 올해 4월 개관이 목표다. 다만 기술적인 문제 등으로 개관이 다소 지연될 수 있다는 것이 수성아트피아 측의 설명이다. 수성아트피아는 모두 10개의 템플릿(전시장 기능을 하는 공간)을 계획하고 있는데, 3개의 템플릿을 먼저 오픈할 생각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문화예술 분야에서의 디지털 기술은 더욱 우리 가까이 왔다. '위드 코로나'로 밖으로의 생활이 본격 재개됐음에도 디지털 기술은 멈추지 않는다. 조용히, 그러나 빠르게 문화예술 분야에서 자신의 영역을 키워 나가고 있다.

무엇보다 가상현실(Virtual Reality·VR) 기술을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수성아트피아의 사례처럼 국내외 문화예술기관들로서는 이런 기술을 어떻게 접목하고 활용할 것인지가 주요 관심사다.

이들 기관은 VR의 편의성과 확장성, 효용성 등에 주목한다. 더 나아가 문화예술에서의 '빈부격차'를 상당 부분 줄일 수 있음을 인식하고 있다.

가상 공간에서는 오프라인과 비교해 공중에서 작품을 보거나 입체적으로 감상할 수 있는 등 시각적 한계가 없다. 또한 현장에서 볼 수 없는 미세한 부분까지 감상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공간과 시간의 제약 없이 세계 곳곳의 문화예술 유산을 향유할 수 있다.

창작자 입장에서도 지역에 한정되지 않고 세계적으로 스펙트럼을 넓힐 수 있다. 캔버스로 그리는 작품을 뛰어넘어 공간 배치 등 디스플레이가 새로운 창작 영역으로 인정받을 수도 있다.

VR은 음악 공연 등에서도 충분히 활용 가능할 것으로 본다. 가상 복합문화공간을 만들어 대관하는가 하면 그곳에서 누구나 세계적인 공연도 감상할 수 있다. VR은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물론 실제보다 현장감은 떨어진다. 그러나 그 빈자리는 익숙함이 채울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가 지금 누리는 많은 것이 10년, 아니 20년 전에는 상상하지 못했고 불편했던 기술이다. 익숙함을 통해 대중화가 되고, 그 사이 부족함은 기술력으로 극복해 왔다.

서영옥 수성아트피아 전시기획팀장은 "오프라인과 온라인이 보완하는 투트랩 방향으로 갈 것으로 본다. 온·오프라인 전시를 같이 가는 경우도 늘 것 같다. 이제 디지털 기술을 도입하지 않으면 도태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일각에서는 문화예술성이나 창의성을 훼손한다는 이유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단순히 낯설고 이질적이라고 폄하하거나 거부하는 움직임도 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라도 이런 우려되는 문제들을 극복하고 슬기롭게 활용할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기술의 시대'의 생존법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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