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각과 전망] 대학 정원 ‘10만 감축’ 퇴로를 열자

이석수 서부지역본부장
이석수 서부지역본부장

2023학년도 대입 정시모집을 마감한 결과, 전국 14개 대학 26개 학과에서 신입생 지원자가 1명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중 경북지역 소재 대학이 10개 학과로 전국에서 가장 많았다는 사실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과 대전·세종지역까지는 무사했고, 나머지는 모두 지방대 차지였다.

사실 지원자 '0명' 학과 발생이 올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에도 있었고, 4년 전에도 존재했다. 하지만 모집 학과 지원자 0명이라는 극단적 양상은 앞으로 더욱 확대되고, 속도 또한 예상보다 급격히 빨라질 수 있음을 보았다. 2020학년도에 전국 3개 대학 3개 학과에서 지원자 0명을 기록했는데, 불과 4년 만에 8배가 증가한 모습을 나타냈다.

눈물은 마를 새가 없다. 2023학년도 정시에서 지방 소재 113개 대학 중 59곳은 3회 지원을 감안한 실질 경쟁률 3대 1에 못 미쳐 '사실상 미달' 상황이다. 신입생 수가 입학 정원보다 3만∼4만 명 부족한 현상이 수년째 이어지고 있는데, 미달 규모의 70%는 비수도권 대학에서 나온다. 수시와 정시에서도 속수무책으로 사실상 대학이 학생 선발 능력을 상실했다는 의미다.

내년은 더 캄캄하게 됐다. 전국 고등학교 3학년 학생 수가 올해 30만 명대로 떨어진다. 교육부의 '2023∼2029년 초중고 학생 수 추계'에 따르면 2023년 고3 학생은 39만8천여 명으로 지난해 43만1천여 명보다 3만3천 명 감소했다. 이는 1994년 대학수학능력시험 도입 이후 역대 최저치다. 고3 학생 수는 2019년 50만1천616명에서 4년 만에 약 21% 급감했다.

2024학년도 대입 선발 인원은 4년제 일반대 34만4천여 명 포함 총 51만여 명이다. 대학 정원보다 고3 학생이 11만 명 이상 부족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지방대와 전문대를 중심으로 역대급 미달 사태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20년 후엔 18세 인구가 23만 명대로 반토막 나 정원보다 학생 수가 최대 31만 명 부족할 전망이다.

대학의 위기는 학령인구가 대학 정원을 밑도는 상황이 예견됐음에도 구조조정에 미온적이었던 정부의 책임이 크다. 2000년대 중반부터 각종 평가에 따라 지속적으로 '한계 대학'을 추려 내지 못했다. 차등은 있었지만 거의 모든 대학에 겨우 연명할 수 있는 예산을 지원하면서 다른 대학들까지 동반 부실 위기로 내몰아왔다.

위기의 본질은 학생에 비해 대학 수가 너무 많다는 데 있다. 대학의 자율에 맡겨서는 충분한 구조조정이 요원함을 확인했다. 2000년 이후 강제·자진 폐교 대학은 17곳에 불과하다. 앞으로 몇 년이 무너지는 대학 생태계를 복원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윤석열 정부는 지방대 살리기를 교육 1호 공약으로 제시했고, 고등교육 권한을 지방에 과감히 넘겨 지역 산업과 연계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수도권 대학 쏠림이라는 근본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지자체에 권한만 부여한다고 지방대 위기가 해결되기 어렵다. 반도체 인력 양성을 위해 수도권 대학 정원은 오히려 늘리고 있는 상황을 봐도 그렇다.

한계 대학들이 자진 폐교한다면 출연 자산 일부를 돌려주거나 사회복지법인 등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한시적 퇴로를 열어주는 법률 제정을 서둘러야 한다. 대학 부지 및 부속 건물은 도서관, 어린이집, 체육시설, 주차장 등 지역 공동체 자산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지방 소멸 위기를 가속화하지 않으려면 수도권 대학의 정원 감축에도 주저함이 없어야 한다.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