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요일 아침] ‘건강 하세요’

박홍규 영남대 명예교수
박홍규 영남대 명예교수

새해 인사로는 물론이고 평소에도 자주 듣는 인사는 '건강하세요'라는 말이다. 일흔 노인이 된 나에게 꼭 필요한 말이라고 생각하는 듯 간곡하게 전하는 그 인사를 차마 마다할 수 없다. 어법에 맞지 않는 틀린 표현이라고 지적하기도 미안하고 해서 똑같이 그 말로 답례를 하지만 항상 찝찝한 느낌이다. 한때는 '부자 되세요'라는 말이 국민 구호였는데 요즘은 '건강하세요'가 더 중요한 국민 구호가 된 것 같다.

그런데 이는 한국인 가운데 대다수가 자신의 건강 상태를 양호하다고 생각하는 것과는 모순이 아닐까? 게다가 최근 한국이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평균 기대수명이 가장 긴(83.6세) 나라인 것과도 모순이 아닐까? 왜냐하면 건강한 사람이 대다수인 사회에서는 건강에 대한 관심이 낮고 건강이 사회문제가 되지 않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언제 어디서나 건강 타령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않을까?

아침부터 밤까지, 집에서나 직장에서나 모두들 건강을 말하고 있는 듯도 하다. 여러 질병의 원인이 된다는 술과 담배를 줄이거나 끊고, 영양의 균형을 위해 규칙적이고 채식 위주의 식사를 하고 몸에 좋다는 각종 영양제를 섭취하고, 스트레스를 없애기 위해 휴식을 취하고, 요가나 헬스를 비롯하여 정기적으로 운동을 하거나 다이어트를 하고, 질병의 조기 발견을 위해 정기적으로 건강진단을 받는 등, 건강을 위해 갖은 노력을 다 기울이는 것이 새로운 국민헌장이 된 듯도 하다. 그러나 정부나 의료기관, 식품회사나 제약회사, 신문사나 방송국 등이 정하고 가르치는 획일적인 기준에 모두들 열심히 따라야 건강하게 사는 것인 양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특히 나이가 들수록 그렇다. 나이가 들면 당연히 건강이 나빠지기 마련인데 그것을 부정하려고 들며, 건강 수호를 유일한 가치로 여기는 듯이 말이다. 건강을 최고 최대의 행복이라고 하면서 건강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며 살다가 병이 들거나 늙어서 죽음이 가까워지면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인가, 모두들 병원에서 살다시피 한다. 병원에서 최고의 치료를 받고 병원에서 죽는 것을 최대의 행복으로 친다. 제대로 치료도 못 받고 죽는 것을 불행이라고들 하며 특히 그렇게 부모를 떠나보낸 자식은 최악의 불효자라고 자책할 뿐 아니라 사회적인 비난도 받는다. 그러나 건강하려고 하면 할수록 건강에 대한 불안은 더욱 커지는 것이 아닐까? 건강하지만 불안하다는 것이야말로 불행이 아닐까? 그런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더욱 건강하게'라는 목표 자체로부터 벗어나야 하는 것이 아닐까?

건강이란 몸에 이상이 없는 상태라고들 한다. 그러나 이상이 없는 건강이 있을 수 있을까? 게다가 이상이 없는 건강이란 하나의 수단에 불과한 것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지 않을까? 도리어 삶 자체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건강한 상태가 아닐까? 병이나 장애가 있어도 그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뛰어넘어 즐겁게 사는 사람이야말로 건강한 사람이 아닐까? 건강은 자기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책임지는 주체적이고 개성적인 삶의 태도가 아닐까? 국가나 의료기관이 우리의 건강 기준을 획일적으로 결정하고, 모든 사람들이 그것에 복종한다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까?

우리는 질병이나 죽음을 피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육체적으로 병 없이, 고통 없이 사는 것에만 만족할 수 없다. 그런 삶 자체가 있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부자가 되는 것만이 삶의 목표일 수도 없다. '부자 되세요'라는 구호와 함께 우리의 21세기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생활수준이 일정한 정도에 오르면 물질적 풍요보다는 정신적 풍요에 관심을 갖는다는 일반적 경향과 달리 우리는 더욱더 부자가 되는 것에 기울어졌다. '건강하세요'도 마찬가지다. 평균수명이 인간의 정상적 활동기를 넘어서서 무한정 길어져 식물인간처럼 생명 자체의 연장에 그치는 것이 과연 좋은 삶일까? 부나 건강이 삶에 필요한 최소한의 필요조건임을 부정할 수는 없겠지만 그것에만 매몰되어 산다는 것은 너무 슬픈 일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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