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종민의 나무오디세이] '도끼날에도 향을 묻히는' 향나무  

천연기념물 경북 울진군 후정리 향나무

(중국) 양나라에서 의복과 향물(香物)을 보내왔을 때 (신라) 사람들은 그 이름과 사용하는 방법을 몰라 수소문하니 고구려에서 온 스님 묵호자(墨胡子)가 말하기를 "이는 향이라는 것으로 태우면 향기가 몹시 풍기는데, 정성이 신성(神聖)한 곳에까지 이르기 때문이다. 신성은 삼보(三寶)보다 더한 것이 없으니, 만일 이것을 태우며 발원(發願)하면 반드시 영험이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이 무렵 병이 위중한 왕의 딸이 있어서 묵호자를 불러 향을 피우고 축원하게 했더니 공주의 병이 이내 나았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신라 19대 눌지왕 시절 중국 양(梁)나라에서 향을 처음 보내왔을 때 일화다. 언제부터 향을 피우기 시작했는지 정확한 연대를 알기는 어렵지만 이 기록을 보면 삼국시대부터 향을 피웠다고 볼 수 있다.

◆'꽃보다 향기' 향나무

양나라에서 신라로 들여온 향물은 우리나라 토종 향나무가 아니라 침향이나 백단이 아닌가 싶다. 침향나무는 인도나 동남아시아의 열대지방에서 자란다. 민물과 바닷물이 교차하는 곳의 땅 속에 오래 묻혀 있으면 나무의 목질을 보호하기 위해 수지성분이 생겨 굳어지면서 단단한 덩어리로 된다. 수지는 물에 가라앉을 정도로 무거워서 침향(沈香)으로 불렀고 한방에서 귀중한 약재로 쓰였다.

비싼 수입 침향을 사용할 수 있는 계층은 왕실이나 귀족 등 특권층 정도다. 향이 널리 쓰이기 시작한 것은 종교의식에 사용하면서부터다. 종교의 발상지는 비교적 더운 나라이기 때문에 사람이 많이 모이는 행사에 불결한 땀 냄새를 없애기 위해 향을 피웠다.

삼국시대에 불교가 전래되고 종교 행사가 일반적으로 열리면서 향의 쓰임이 늘게 되어 우리나라에서 상대적으로 구하기 쉬운 목향을 썼을 것으로 추정된다. 향긋한 냄새를 풍기는 토종 나무 중에서 향나무만 한 게 없다. 보통 나무의 향은 꽃이나 잎, 열매에 정유(精油)로 들어있으나 향나무는 나무 속 심재에 향이 많다. 나무를 베어 말려도 향기가 금세 없어지지 않고 은은하게 지속된다.

종교 행사에 쓰이던 향의 효능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부정한 기운을 없애고 정신을 맑게 해주어 천지신명과 연결하는 통로가 된다고 여기게 됐다. 그래서 각종 제사나 의식에서 가장 먼저 향불을 피웠다. 또 심신을 수양하기 위해 정화의 의미로도 향을 태운다. 주로 향나무를 얇게 저며서 향로에 넣는다. 붉은빛이 도는 자주색 나무를 자단(紫檀)이라 하고, 향기가 나는 나무라는 뜻으로 목향(木香)이라고 불렀다.

울릉군 도동 산등성이에 있는 수령 약 2천300년의 향나무.

◆우리나라 최고령 도동 향나무

우리나라에서 향나무 자생지가 비교적 잘 남아 있는 곳은 울릉도다. 지난 2013년 산림청 녹색사업단의 조사에 따르면 울릉도 도동항 절벽 꼭대기에 있는 향나무의 나이는 무려 2천300년으로 추정되며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다. 최고령급 노거수로 인정받아온 강원도 정선군 두위봉에 있는 천연기념물 주목이나 경상남도 하동군 국사암의 '사천왕수'라 불리는 수령 약 1천200년의 느티나무, 경기도 용문사에 있는 수령 1천100~1천200년의 은행나무를 능가하는 나이다.

울릉도 주민들은 향나무 나이가 3000살이 넘는다고 믿는다. 화산암에 붙어서 자라기 때문에 내륙에서 자라는 향나무보다 성장이 더디므로 나이가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한다.

울릉도 향나무가 주목받는 이유는 육지에서는 오랜 남벌로 자생지를 찾기 힘들지만 섬에서는 자생하는 향나무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천연기념물 울릉군 대풍감 향나무 자생지

울릉도 향나무도 무분별한 채취로 인한 수난을 당해왔다. 조선시대 조정에서 필요한 향나무를 2년에 한 번씩 조달했다. 조선왕조실록 정조 18년 갑인(1794) 6월 3일의 강원도 관찰사가 올린 울릉도 수토 장계에는 "예전에 한 해 걸러 향나무를 베어 갔던 까닭에 향나무가 점차 듬성듬성해지고 있다"는 내용으로 봐서 그 당시에 이미 자생지가 손상되고 있었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후 혼란기를 틈타 벌목과 반출이 성행했고, 사람 발길이 닿는 자생지의 훼손이 빠르게 진행됐다. 지금은 울릉도 통구미 향나무 자생지를 천연기념물로 보호하고 있다.

◆향나무를 노송이라 불러

옛 책에 향나무는 노송(老松) 혹은 만년송(萬年松)으로 나온다. 조선시대 최초 원예서인 『양화소록』에는 「만년송」의 생김새를 붉은 뱀[赤蛇]으로 묘사하고 모습에 따라 가품(佳品)과 하품(下品)으로 등급을 나누었다.

"만년송은 반드시 층층의 가지와 푸른 잎이 마치 실이 아래로 드리운 듯하고, 줄기는 구불구불하고 붉은 이무기가 숲에서 뛰어오르는 듯하며, 향기가 맑고 강한 것이라야 좋다. 잎이 흰빛을 띠고 가시가 있는 것은 하품이다. 이 솔이 금강·묘향 두 산의 정상(頂上)에 잘 나는데 스님들이 캐다가 불전향(佛前香)을 만든다."

안동 주촌종택 경류정 앞에 있는 천연기념물 뚝향나무

퇴계 이황 선생의 증조부 집인 진성 이씨 안동 주촌종택 경류정 앞, 행랑채 옆에 약 600살의 천연기념물 뚝향나무가 있다. 세종 때 선산 부사를 지낸 이정(李楨)이 평안북도 정주 판관으로 약산성 공사를 마치고 귀향할 때 가지고 와서 심었다.

이 나무를 소재로 유림이 지은 한시 120여 수를 엮은 책이 『노송운첩』이고, '나무 심은 지 400년 후 정해년(丁亥年) 12월'에 후손 이만인(李晩寅)이 남긴 글이 「경류정노송기」(慶流亭老松記)다. 이정의 후손들은 뚝향나무를 '약산노송'이라고 불렀다. 퇴계의 조부 집인 안동시 온혜리의 노송정종택의 사람들 역시 뚝향나무를 노송이라고 부른다.

서유구의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행포지」에 "배나무는 노송(老松)을 싫어하며 배 밭 가까이 심은 노송 한 나무가 배나무 모두를 죽게 한다"고 했다. 여기서 노송은 오래된 소나무가 아니라 향나무로 보인다. 향나무는 배 과수원 옆에 심으면 붉은별무늬병(적성병)의 중간숙주 역할을 하여 배 밭을 망치게 한다.

중국에서는 향나무를 아주 소중하게 여겨 '보배같은 소나무'라는 뜻의 보송(寶松), 둥근 측백나무라는 의미로 원백(圓柏)이라고 불렀다.

경북 경주시 양동마을 송첨종택의 서백당 뜰에 있는 향나무

◆향나무 종류

향나무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종류로는 울릉도 섬향나무와 조선향나무가 대표적이다. 그리고 높은 산에서 강한 바람을 받아 누워서 자라는 눈향나무, 우물가에 주로 심는 뚝향나무와 전라남도 순천 송광사 천자암의 '곱향나무'로 알려진 쌍향수가 있다. 일본에서 들여온 가이즈카향나무와 둥근향나무도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대구 달성공원의 가이즈카향나무

가이즈카향나무는 바늘잎이 거의 없고 비늘잎만 있는 변종이다. 일본 오사카 남쪽 가이즈카(貝塚)란 곳의 지명을 딴 이 향나무는 나선 모양으로 뒤틀리므로 '나사백'이라고도 하며, 잔가지가 발달하여 여러 가지 모양으로 다듬기가 쉬워서 정원수로 쓰인다. 때문에 항일유적지 등에 심으면 논란을 불러일으킨다. 대구 중구 달성공원에는 100년 넘게 자란 몇 아름되는 커다란 가이즈카향나무가 있다. 순종이 대구 방문을 기념해서 심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뚝향나무는 줄기가 2~3m쯤 올라온 후 가지가 수평으로 넓게 퍼진다. 안동시 주하리 주촌종택 경류정 앞의 천연기념물뿐만 아니라 경북 청도군 명대리에도 경상북도기념물로 지정된 뚝향나무가 도로 옆에서 자란다.

경북 영덕군 경정리 눈향나무

눈향나무는 정원수로 흔히 만날 수 있지만 원래는 눈주목처럼 고산 지대의 절벽지에 드물게 자라는 희귀식물이다. 거센 바람을 이기기 위해 누워 자라다 보니 아예 DNA가 굳어버렸다. 경북 영덕군 경정리 바닷가 너비 약 30m, 높이 10m가 넘는 큰 바위를 눈향나무가 뒤덮고 있다. 500년쯤 전에 안동 권씨가 마을을 처음 개척할 때 바위 위에서 저절로 자라난 나무라고 전해진다. 높은 산도 아닌 바닷가에 눈향나무가 자생하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내륙에서 향나무 자생지를 찾기는 쉽지 않지만 조상들이 잘 가꿔온 나무가 대구경북의 서원, 종택, 재실, 산소 주변 등에 터를 잡고 있다. 그중 울진군 후정리, 울진 화성리, 청송 장전리 향나무는 천연기념물이다.

경북 시군에는 보호수나 도기념물로 지정된 향나무가 있다. 경주 양동마을 월성 손씨 종택인 송첨(松簷)고택의 서백당 정원에 서있는 향나무는 경북 기념물이다. 하늘로 뭉게뭉게 번져가는 구름처럼 가지가 무성하고 수려하다. 조선 세조 2년(1456) 입향조 손소가 이 집을 새로 짓고 기념으로 20년생 향나무를 심었다.

경북 칠곡군 왜관읍 석전리의 귀암종택(歸巖宗宅)의 향나무는 누워서 자란다. 수령 350년으로 나무 높이(길이)가 12m나 되는데 종택 안 담장에 걸쳐 길게 누운 채 자라는 모습이 용이 승천하는 듯해서 특이하다.

경북 칠곡군 석전리 귀암종택의 누워 자라는 향나무

◆'소신공양'으로 기운 정화

상수도 시설이 없던 시절 향나무는 우물가나 샘가에 많이 심어졌다. 잡귀를 쫓는 벽사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청정(淸淨)을 상징하는 나무로 여겼기 때문이다. 또 향나무는 궁궐이나 사찰뿐만 아니라 살림이 넉넉한 양반집이나 선비들의 정원에 심어져 정원수로 인기를 누렸다. 회재 이언적 선생의 종택인 경주시 안강읍 독락당에는 집 안 곳곳에 향나무가 서 있다.

전라남도 순천 송광사 천자암의 쌍향수

맑고 싱그러운 향을 풍기는 향나무 목재는 빛깔도 곱고 무늬도 아름다워 예로부터 품위 있는 가구나 조각의 재료로 쓰였다. 발향이라는 장신구, 염주 알, 점치는 도구 등에 이르기까지 널리 쓰였다. 불상 등으로도 특별하게 쓰였는데 해인사의 비로자나불은 신라시대에 향나무로 만든 불상이다.

향나무는 스스로를 태워서 향기롭게 만들고 어지러운 기운을 정화하는 소신공양(燒身供養)의 전형이다.

'의인은 향나무처럼 자기를 찍는 도끼에도 향을 묻힌다'는 말은 프랑스 작가 조르주-앙리 루오의 대표적인 동판화 연작 「미제레레」의 46번 작품에 나온다. 1번 '하느님, 당신의 자애에 따라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부터 58번 '그의 고통 덕분에 우리는 치유되었다'까지 예수의 죽음을 소재로 하여 전쟁에 대한 참혹성과 비탄함을 담은 작품도 다수 포함돼 있다. 1, 2차 세계대전 후유증으로 고통을 겪은 프랑스인들에게 큰 위로와 감동을 주었다.

이종민 선임기자

세대, 지역, 젠더 갈등과 불신이 점점 극단으로 치닫는 지금 우리사회에도 서로를 보듬어주고 위로해주는 감동이 필요하다.

선임기자 chungham@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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