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청라언덕] 왜 차로 남의 가족을 죽입니까?

우회전 신호등이 설치된 교차로에서 적색 신호시 정지 의무를 어기면 처벌되는
우회전 신호등이 설치된 교차로에서 적색 신호시 정지 의무를 어기면 처벌되는 '도로교통법 시행규칙'이 설날인 1월 22일부터 시행된다. 지난 1월 18일 대구 동구의 한 도로에서 차량들이 우회전 신호에 맞춰 통행을 하고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황희진 디지털국 기자
황희진 디지털국 기자

회사 인근 산책을 좋아합니다. 청라언덕·제일교회·진골목 등 대구근대골목 명소가 모여 있기 때문입니다. 10여 년 전 더현대대구 백화점이 들어선 걸 계기로 역시 근대골목에 속한 약령시와 종로에 이런저런 가게가 많이 생기며 흡사 천지개벽했습니다.

그만큼 보행자도 많아졌는데, 걷는 환경은 여전히 녹록지 않습니다.

'짐승 같은' 차들 때문입니다.

회사에서 요즘 걸그룹 '뉴진스'가 뮤직비디오를 찍어 화제가 된 청라언덕으로 향하는 길이 있습니다. 신호등이 있는 횡단보도와 교통섬을 지나 다시 관광안내소 앞 또 다른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야 하는데, 여기가 문제입니다. 차들이 횡단보도 앞에서 보행자를 위해 잠시 멈춰 주는 경우가 흔치 않습니다. 왜냐하면 좀 더 멀리 계산오거리의 차량 신호등이 녹색일 경우 그게 적색이 되기 전 통과해 수성구 쪽으로 가려고, 또는 빨리 우회전을 해 달서구 쪽으로 가려고, 그보다 앞 횡단보도를 건너려는 보행자는 보지도 않고 액셀러레이터를 밟는 운전자가 참 많습니다.

약령서문에서 서성네거리로 진입하는 구간도 가관입니다. 차들이 네거리 진입에 앞서 동편 중앙대로81길·남성로 등 '골목길'을 일반 차도처럼 질주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주말에 보행자가 많으면 어쩔 수 없이 못 내는 속도를 보행자 한두 명 정도만 있으면 '하찮게 보고' 높이는 것 같습니다. 보행자가 조선시대 고관대작이 탄 가마 피하듯 몸을 숙여 비켜줄 거라 착각한 듯 속도를 줄이지 않는 차도 많습니다.

여행을 가면 걷는 걸 좋아해 미국, 유럽, 일본의 운전자들을 여럿 접했습니다. 희한했습니다. 저 멀리 지평선에서 오는 차량 운전자들은 시력이 한국 사람들보다 얼마나 월등한지, 횡단보도 앞에 섰거나 건널목이 없는 길을 건너려는 저를 발견하고는 미리 서행해 부드럽게 섰습니다. 그러곤 머뭇거리는 저를 얼마고 기다려줬습니다. '저는 당신을 위해 무조건 기다릴 것이니 안심하고 건너십시오'라는 표현이었습니다. 보행자가 차한테 양보를 받다니. 한국에서는 접하기 힘든 경험이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수많은 보행자가 꾸준히 죽고 있습니다. 심지어 어린이가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에서 죽어 관련 법이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희한한 일입니다. 보행자가 보이면 차가 일단 멈추는 상식이 어른들 머릿속에 좀체 구현되지 못해 법이 거들어야 하는 현실이 말입니다. 그럼에도 어린이들은 스쿨존에서 계속 죽습니다. 법도 모자란 상황입니다.

차가 속도를 죽여야, 그러니까 운전자가 성질을 죽여야 반대로 보행자가 삽니다. 여러분의 아내, 딸, 아들, 남편은 차에서 내리면 그냥 보행자입니다. 무슨 원한이 있어 서로가 서로의 가족을 차로 쳐 죽이려고 이리 애씁니까?

교차로 보행자 안전을 높이는 '우회전 신호등'이 22일 설날부터 정식 도입된다고 합니다. 관련 뉴스에는 '차만 더 막힐 걸 예상 못한 제도' '저 신호 제대로 지키면 뒤에서 경적을 울릴 것' '(반대급부로) 무단횡단 처벌부터 강화하라' 등의 댓글이 달렸습니다. 예. 급하면 전날 차를 몰고 나오면 됩니다. 실은 운전자끼리도 저런 성질 급한 사람을 만날까 두렵습니다. 일단 신호를 지키고 나서 그걸 근거로 당당하게, 무례한 내지는 불법을 저지른 보행자를 탓하면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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