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살인을 모의하는 자들

조두진 논설위원
조두진 논설위원

길을 걷다 보면 타인과 부딪치거나 헛다리를 짚어 넘어질 수 있다. 그래도 괜찮다. 옷에 묻은 흙먼지를 툴툴 털고 일어서면 된다. 하지만 벼랑 끝을 걷던 중이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부딪치거나 헛다리를 짚었다는 점은 똑같지만 한쪽은 툴툴 털고 일어서면 그만이고, 다른 한쪽은 벼랑 아래로 추락한다. 발생한 사건 자체가 돌이키기 힘든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도 있지만, 사건이 언제, 어떤 상황에서 발생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완전히 달라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우리가 평소 벼랑 끝에 서지 않도록 애써야 하는 이유다.

음주 운전자가 15일 오전 2시 10분쯤 신대구부산고속도로 경북 경산시 남천면 구간에서 역주행하다가 마주 오던 마티즈 승용차와 충돌해 마티즈에 타고 있던 2명 중 1명이 사망하고, 1명이 크게 다쳤다. 사고를 낸 운전자는 대구 시내에서 음주 접촉 사고를 내고 달아나던 중 고속도로 출구로 진입했고, 역주행하다가 사고를 냈다.

운전을 하다 보면 가벼운 접촉 사고에서부터 인명 사고까지 발생할 수 있다. 그런 사고라면 무난히 수습할 수 있다. 그러나 음주 사고는 다르다. 수습 비용이 많이 들고 처벌도 무겁다. 그래서 운전자는 이 상황에서 달아나려는 어리석은 시도를 하게 된다. 그렇게 극도로 긴장한 상태에서 달아나다가 더 큰 사고를 내는 사례는 수없이 많다. 음주 사고를 내고 도주하다가 가로수를 들이박고 사망한 사건, 연쇄 추돌 사건, 보행자를 치어 죽음에 이르게 한 사건, 심지어 음주 사고를 은폐하기 위해 자신이 치어 부상을 입힌 사람을 병원으로 이송하던 중 살해한 사건도 있었다. 합리적인 판단력과 균형감을 잃어버린 상태에서 2차, 3차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음주는 죄가 아니지만 음주자가 운전대를 잡는 순간 끔찍한 범죄가 발생한다. 한두 번은 사고와 단속을 피할 수 있겠지만, 필연적으로 끔찍한 사고로 이어지게 되어 있다. 그렇게 자신과 가족의 인생을 망치고, 아무 원한도 없는 타인의 생명과 그 가족의 삶을 도륙한다. 음주했다면 대리운전이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될 것을 왜 그 어처구니없는 바보 짓을 하는가. 술을 마시고 운전대를 잡는 것은 자신을 벼랑 끝에 세우는 짓이자 사람을 죽이겠다고 칼을 드는 행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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