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혹한의 설, 도움 될 만한 책 두 권…“매서운 글·꼿꼿 처신” vs “너무 쓸모 있게 살지 말라”

‘영원한 대기자 조용중’과 ‘장자’

혼돈의 시기에도 어김없이 설이 돌아왔다. 강추위 속에 21일에서 24일까지 4일 동안 이어지다 보니 의미 있는 시간을 만들자는 고민이 생길 수 있겠다. 스마트폰 대신 책장을 넘기고 싶은 독자도 적지 않을 터다. 이런 분에게 도움이 될 만한 두 권의 책이 잔잔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가뜩이나 대장동 비리의 몸통 중 하나인 '김만배 돈거래'로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게 되는 이 즈음이다. 우리 시대 마지막 지사형 (志士型) 언론인으로 불린 '영원한 대기자 조용중'(글방과 책방)은 언론인의 모습이 어때야 하는 지를 보여준다.

'넓은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비주류와 소통·공감하라'(김원중 단국대 한문교육과 교수)는 대략적 자평의 '장자'(휴머니스트)는 노닐 듯 사는 일상을 꿈꾸는 이들을 깊은 사유의 세계로 인도한다. 워라벨을 추구하거나 반목의 시대에 문제 의식을 갖고 있다면 곱씹을 만하지 않을까.

◆'영원한 대기자 조용중'

흔히 평전은 피고름으로 쓴다고들 한다. 그만큼 공을 들여야 한다는 의미다. 2018년 별세한 언론인 조용중의 삶을 기린 추모집이다. 선비이자 지사형 언론인이었던 조 선생의 진면목을 주변에서 겪거나 지켜본 쟁쟁한 언론인들이 힘을 모았다. '조용중 선생 추모문집간행위원회'가 펴낸 책에는 추모 글과 조 선생이 남긴 시론 등이 실렸다. 간행위원장은 경북 의성 출신인 남시욱 전 문화일보 대표이사 사장이다.

조 선생은 충남 대덕이 고향으로 정치부 기자로 이름을 날리며 펜이 권력을 이기는 힘을 보여줬다. 탐사보도의 선구자이기도 했다. 서울신문·경향신문 편집국장을 역임하고 연합통신(연합뉴스 전신) 사장을 지냈다. 관훈클럽 총무와 한국언론연구원장, 한국ABC협회장을 맡았으며 문우언론재단 이사장으로 맹활약했다. 제대로 배움을 길을 걷지 못한 이유가 조부·선친 2대에 걸친 독립운동 때문이었다는 사실도 새롭게 밝혀졌다.(유우봉 전 경향신문 문화부 기자)

조 선생은 88년의 생애 가운데 60년 넘게 언론인 외길을 걸었다. 우리 시대 마지막 지사형 기자의 표상으로 권력에 영합하지 않은 날카로운 글과 곧은 처신으로 귀감이 됐다. 그는 기자 시절 자유당 정권의 횡포를 집요하게 보도했고, 논객으로서는 김대중 대통령의 신문사 세무사찰 등을 매섭게 비판했다.

그러면서도 언론인으로서는 드물게 '고련(苦戀) 10억의 정치와 문예…北京 속사정' 등 5권의 저서를 냈고, 고려대 석좌교수로 대학 강단에 선 인물이었다. 병마에 시달리던 2017년에는 대한언론인회가 발간하는 '월간 대한언론'(2017년 9월)에 '박근혜와 언론 동반 추락'이라는 제목의 글을 실어 촛불 시위 당시 우리 언론의 편파 보도를 매섭게 꾸짖었다.

관훈클럽 총무를 지낸 구월환 전 연합통신 상무는 조 선생을 '직사포 기질…기자 같은 경영인'이라고 했다. "그에게서 먼저 떠오르는 것은 기자다. 그의 언행과 표정에서 느껴지는 것은 언론사 경영인 보다는 기자 또는 편집국장이다. 논평은 항상 날카롭고 중심을 찔렀다"라고 기록했다.

임종건 전 한국ABC협회장(전 서울경제 대표이사)은 "조 선배의 웹사이트 공사체제 구축은 한 세대를 앞선 선견지명이었다. 노무현 정부가 신문부수 상한제를 시행하려 했을 때 앞장섰다"며 "ABC 발전을 이루도록 지혜를 주시고 응원해 달라"고 존경을 감추지 않았다.

조 선생은 대구경북과도 인연이 있다. 선비로 불린 그는 틈만 나면 책을 사서 읽었다. 사후에는 4천 여권을 포항공대 청암도서관에 기증했다. 외손자 문재석씨가 포항공과대학에서 학사·석사·박사 학위를 받은 인연 때문 이었다. 도서관이 책 기증을 사절한 지 오래된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그 만큼 소장 가치가 있었다는 의미다.

박석흥 간행위원(전 문화일보 편집국 국장)은 "조 선배는 권력에 영합하지 않고 날카로운 글과 처신으로 동료 후배들의 존경을 받고 귀감이 되었던 언론인이었다"며 "추모문집이 후배들에게 작은 등불이 되기 바란다"고 했다. 그는 또 경향신문 시절 당시 조 국장 아래서 학술기자 훈련을 받았다고 회고하며 특별한 그리움을 나타냈다. 기자가 기레기로 폄하되는 시절, 언론인뿐 아니라 정의와 공정을 바라는 이들이 탐독할 역저가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한국 현대사의 한 장면을 보는 듯 술술 넘어간다.

◆장자

고전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익숙한 이름이다. 김원중 단국대 한문교육과 교수. '삼국유사' 번역본이 50만부 넘게 나가면서 일찌감치 낙양의 지가를 올린 인물이다. 그가 설을 앞두고 '장자' 번역본을 내놓았다.

내편 7편과 외편 15편, 잡편 11편으로 구성된 '장자'는 도와 무위를 강조하는 '노자 도덕경'의 사상을 계승하되 도가적 사유를 확장하고 그 개념을 다양화한 도가의 대표 고전이다. 유가, 법가 등에 이어 동양 사상을 집대성한 번역본이다.

'장자' 번역이 늦어진 데는 이유가 있다. 김 교수는 '사기'의 '노자한비열전' 편을 작업할 때부터 장자에 매료됐다고 한다. '…나는 차라리 더러운 시궁창에서 노닐며 즐길지언정, 나라를 가진 제후들에게 얽매이지는 않을 것이오. 죽을 때까지 벼슬하지 않고 내 마음대로 즐겁게 살고 싶소'라고 한 장자의 배짱!

이때부터 기회가 되면 번역하리라고 마음먹었지만 여정은 가시밭길이었다. 20년 전의 꿈은 2020년 가을 본격화됐지만 '장자' 특유의 해학과 풍자, 촌철살인의 미학을 우리 글로 옮기기가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구어체 표현이 많았죠. 까다로운 문장은, 아" 김 교수의 토로다. 자유로운 영혼의 장자는 거침이 없고, 낭만적이었다. 생계는 관심 밖이었고, 변두리에서 주변인처럼 살았다. 오늘의 한국인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삶이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장자'에서 모든 존재와 사유는 상대적이며, 인간은 감히 사유를 판단하거나 진위를 간별할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물과 아를 구분하거나 사사건건 시비를 가리려는 유가의 인간 행태를 경계하며, 사물과 자아 사이의 구분이 사라지는 경지를 추구한다. 인간인 장주가 곧 나비일 수도 있고, 나비가 곧 장주일 수도 있다('호접몽')는 것이다. 아집에 사로잡히거나 이념과 진영으로 갈려 싸우는 오늘의 현실에 던지는 메시지로도 받아 들여진다.

특히 장애인이나 어부를 포함 비주류적 존재와 교류하면서 공감하는 장면은 시사하는 바 크다. 김 교수는 "'장자'에 담겨 있는 넓은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비주류와 소통 공감하면서 분별 차별을 없애자는 주장을 경청할 만하다"고 했다. 또 권력과 명예를 탐하는 유가의 속물 근성을 비판하면서 너무 쓸모 있는 존재가 되지 말라는 이야기가 의미심장하다. '쓸모없음의 쓸모'를 강조한 이른바 무용지용(無用之用)이다. 나무가 재목이 아니기 때문에 비로소 천수를 누려 신인(神人)이 된다는 것.

어려서부터 조부에게 한학을 배운 김 교수는 동양 고전을 우리 시대의 보편적인 언어로 온전하고 말끔하게 실어오는 작업에 천착해왔다. '사기' 전체를 완역했고, 20여권의 동양 고전을 번역했는데 거의 모두 스테디셀러가 되면서 고전과 종이의 위대한 힘을 보여주고 있다.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