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간첩 활개 치는 나라

이대현 논설실장
이대현 논설실장

오스트리아 빈의 고급 호텔 창문 밖으로 돌을 던지면 셋 중 한 번은 간첩이 맞는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국제기구가 많이 있는 빈에 자국 이익을 위해 비밀리에 활동하는 각국의 정보 요원이 그만큼 많다는 말이다.

구한말 조선에도 각국의 간첩들이 활개를 쳤다. 특히 일본은 외교관, 언론인, 전문가 등을 조선에 파견해 조선의 내정 등을 조사했다. 이들의 활약으로 일본은 청,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했고 끝내 조선을 집어삼키는 데 성공했다.

동독 비밀경찰 슈타지의 문서가 공개되면서 서독에서 암약했던 동독 스파이가 최소 2만~3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빌리 브란트 총리의 비서가 동독 간첩이었고, 동독이 서독 요인들의 여비서를 미남계로 포섭한 사실이 확인됐다. '발트해의 진주' 라트비아에서는 몇 년 전 '스파이 리스트'가 공개돼 발칵 뒤집혔다. KGB가 남겨둔 서류에 있던 소련 정보원과 협력자 4천141명의 명단이 드러났는데 전직 총리, 대법원장, 대학 총장 등이 두루 포함돼 있었다.

북한 노동당 비서를 지낸 황장엽 씨는 생전에 우리 사회의 심각한 좌경화를 우려하면서 '고정간첩 5만 명'을 주장한 바 있다. 간첩이 그때보다 더 늘었으면 늘었지 줄어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민노총 전·현직 간부들이 간첩 활동을 한 혐의로 국가정보원 수사를 받고 있다. 법원이 발부한 압수수색 영장에는 국정원이 장시간에 걸쳐 확보한 구체적인 근거가 포함됐다는 후문이다. 2011~2016년 26건이었던 간첩 적발 건수가 문재인 정부 시절엔 3건에 불과했다. 간첩이 줄었기 때문이 아니라 간첩 수사 능력이 실종돼 간첩 적발 건수가 격감했다면 문제가 심각하다. 문 정부는 국정원을 간첩 수사나 대북 정보 수집 기관이 아닌 남북 대화 창구로 변질·추락시켰다.

'방첩'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국가 기밀을 빼내 적국에 넘기는 전통적 간첩 행위가 요즘엔 산업 스파이, 테러, 여론 조작과 선거 개입, 반정부 선동 등으로 그 영역이 확대되는 추세다. 인터넷과 첨단 장비를 활용하는 등 수법도 교묘해졌다. 간첩이 활개 치는 나라는 결국 망국의 운명을 맞았다는 사실을 새삼 명심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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