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주'라고 하면 여전히 거창한 느낌인가. 최근 SNS 등을 통해 소개되는 세계일주를 보면 그 느낌이 과거와는 사뭇 달라졌다는 걸 실감한다. 어딘가 일상화되고 토착화된 세계일주. MBC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는 이러한 과거와는 달라진 여행 감성을 보여준다.
◆세계일주와 기안84의 만남
코로나19의 엔데믹 분위기는 예능가에도 변화를 만들고 있다. 한때 예능의 주 트렌드로 자리했었지만 코로나19 여파로 해외여행길이 막혀버리면서 역시 일거에 사라져버렸던 여행 예능(특히 해외여행을 소재로 한)들이 최근 하나둘 기지개를 켜고 있기 때문이다. 나영석 PD가 이서진과 함께 멕시코로 떠나 그 곳에서 분식집을 운영하는 tvN '서진이네'가 촬영을 마치고 편집에 들어갔고, 하정우와 주지훈이 의기투합해 뉴질랜드 남섬을 횡단하는 티빙 오리지널 예능 프로그램 '두발로 티케팅'이 선을 보였다. KBS는 '걸어서 환장 속으로'라는 스타가족들의 좌충우돌 해외여행을 선보였고, '어쩌다 사장'으로 좋은 반응을 얻었던 유호진 PD는 부산 출신 4인방이 시드니로 워킹 홀리데이를 떠나는 리얼리티 여행 예능 '니가 가라 시드니(가제)'를 준비 중이다. MBC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 역시 이런 대열의 맨 앞에 선 여행 예능 프로그램이다.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는 기안84와 이시언 그리고 스타 여행 유튜버 빠니보틀이 남미를 여행하는 과정을 담은 프로그램이다. 여기서 이 특별한 여행 예능의 색깔을 만드는 인물은 바로 기안84다. '나 혼자 산다'를 통해 간간히 소개되기도 했던 대로, 국내 여행을 하더라도 어딘가 '날 것'의 야생을 보여주곤 했던 기안84다. 그러니 그가 해외의 낯선 곳에서 펼치는 여행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나 혼자 산다'를 연출했던 김지우 PD는 바로 그런 재미 포인트를 정확히 짚었고, 기안84에게 이를 제안함으로써 이 프로젝트를 성사시켰다.
제목에도 담긴 것처럼 '태어난 김에 사는 듯한' 기안84의 세계여행은 그 시작부터 남달랐다. 세계여행이라고 하면 준비할 것도 많은 게 상식적이지만 떠나기 몇 시간 전까지도 소파에서 뒹굴 대다가 속옷 몇 개 챙겨 넣은 가방 하나를 둘러매고 여행을 떠나는 광경이라니! 세상에 걱정이라는 건 1도 없어 보이는 이 특별한 인물은 남미 페루의 낯선 곳에서도 아무 데나 앉아 자신에게 주어진 휴대용 카메라로 '기안TV'를 선보이고, 호텔에서도 마치 그 곳에 오래도록 살던 사람처럼 스스럼이 없다.
물론 영어도 잘 못하고 스페인어는 더더욱 못하는 기안84가 현지인들과 술술 소통하는 그런 장면이 나올 리 만무다. 하지만 뭐든 몸으로 부딪치고 손짓 발짓으로 소통하며 체험하는 이 날것의 여행이 의외로 몰입감을 준다. 마치 나를 대리해 하는 생생한 리얼 여행이라고나 할까. 그간의 여행 예능이라고 하면 현지의 이국적인 풍광들을 아름답게 포착해 보여주는 경향이 있었지만, 기안84의 세계일주는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 거의 현지인 수준으로 그들의 자연과 일상 속으로 들어가는 여행을 보여준다. 심지어 피라냐가 사는 아마존강에 뛰어들어 수영을 하고, 그 곳 열대우림에서 살아가는 현지인의 집을 방문해 그들의 일상을 똑같이 경험하기도 한다.
◆SNS 여행이 바꿔 놓은 해외여행
사실 여행에도 트렌드가 있다. 한때 관광지를 찾아 사진을 찍고 했던 관광여행의 시대가 있었다면 그 후에는 그런 관광지를 벗어나 자연 속에서 캠핑을 하며 함께 하는 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아웃도어 여행의 시대가 있었다. 그러다 해외여행이 본격화됐고, 그 중에서도 중장년층까지 확산되는 배낭여행이 또 하나의 트렌드로 떠오르기도 했다. 그리고 그저 지나치는 여행이 아니라 정착해 일정 기간을 살아보는 여행이 생겨나더니 이제는 다소 낯선 곳까지 들어가 그 누구도 해보지 못한 경험을 해보는 세계여행 트렌드도 생겼다.
여행의 트렌드는 여행 예능의 트렌드와도 연결되어 KBS '1박2일'이 야외취침과 더불어 아웃도어 여행을 선보였고, '꽃보다' 시리즈가 배낭여행을 기반으로 한 해외여행들을 다양한 세대와 성별로 구획해 보여준 바 있다. 또 '살아보기' 트렌드와 연결된 '윤식당' 같은 정착형 여행 예능도 등장했다. 하지만 최근의 여행 예능의 경향을 이끄는 건 기성 미디어의 예능 프로그램들이 아니라 유튜브 같은 SNS다.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에 출연한 빠니보틀은 바로 그 여행 유튜버로 스타덤에 오른 인물이다. 또 올 상반기 방영예정인 tvN '니가 가라 시드니'에도 스타 여행 유튜버 곽튜브가 함께 했다. 이들의 여행이 다른 점은 현지와 훨씬 더 밀착된 여행을 통해 현지인처럼 살아보는 과정들이 담긴다는 점이다.
사실 기존의 여행 예능 프로그램들은 연예인들이 주로 중심을 잡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유튜버들처럼 현지에서 부딪치며 날 것의 여행을 보인다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연예인은 아니지만 연예인급의 방송 경력과 주목도를 가졌고 하지만 삶의 방식은 '태어난 김에 사는 듯' 대충대충 하는 기안84라는 인물은 두드러질 수밖에 없다. 어찌 보면 달라지고 있는 여행 트렌드와 그래서 거기에 발맞춰야 하는 여행 예능 역시 날 것의 여행을 보여줄 수 있는 인물을 찾아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된 셈이다. 기안84는 그런 점에서 보면 최적의 인물이고 그가 포문을 연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는 선제적으로 지상파가 변화된 트렌드를 받아들여 만들어낸 여행 예능이라는 의미와 가치가 있다.
◆이시언, 빠니보틀과의 '티키타카'도
그렇다고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가 기안84만에 의한 여행 예능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가 구심점이 되어 현지 깊숙이 들어가 체험하는 날 것의 여행이 가장 큰 묘미를 주곤 있지만, 그와 대척점에 서서 도무지 그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툴툴대면서도 동생을 늘 생각하는 '도시남' 이시언이 주는 비교 체험의 묘미도 빼놓을 수 없다.
아무 것도 준비하지 않고 왔을 걸 직감해 동생에게 나눠줄 속옷과 침낭까지 챙겨온 이시언은 기안84와 성향이 정반대라 티격태격 감정싸움까지 하게 되는데 극과 극의 모습이 두 사람의 개성을 더 뚜렷하게 그려내는 효과를 주기도 한다. 뭐 하나 먹는 것도 가리는 이시언과 달리, 주는 대로 척척 받아먹고 거의 현지인처럼 적응하는 기안84의 모습은 이시언이 있어 더 도드라진다. 여기에 이미 그 곳을 여행한 경험자로서의 빠니보틀이 함께 하면서, 능숙한 스페인어, 영어 능력으로 어려운 소통의 문제를 풀어주고 그만이 아는 여행의 팁까지 전수해주는 역할을 맡는다. 그가 있어 훨씬 안정화된 여행의 모양새가 만들어지는 것. 극과 극의 캐릭터 사이에서 빠니보틀이라는 중재자가 들어가 들어옴으로써 이 긴장감 넘치는 날 것의 여행은 간간히 온천을 즐기기도 하는 숨통을 틔워준다.
애초 6부작으로 기획됐지만 높은 시청률과 화제성을 불러일으키면서 1회 연장된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는 7부작으로 마무리됐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이 프로그램은 시즌2 제작을 확정했다. 어디로 여행을 가게 될지 또 누가 출연하게 될 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기안84가 또 함께 하는 여행일 수도 있지만, '나 혼자 산다'의 다른 멤버들이 합류할 가능성도 있다. 즉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가 마치 '나 혼자 산다'에 등장했던 출연자들이 함께 하는 또 하나의 스핀오프로 자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안84가 활짝 열어 놓은 새로운 여행 예능의 길 위에 얼마나 다른 인물들이 여행을 통해 새로운 면모를 보여줄지 기대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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