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청라언덕] 대통령과 도지사의 고장 난 벽시계

경북도청 1층 로비 미래창고 모습. 경북도 제공
경북도청 1층 로비 미래창고 모습. 경북도 제공
임상준 경북부 차장
임상준 경북부 차장

'세월아 너는 어찌 돌아도 보지 않느냐~고장 난 벽시계는 멈추었는데, 저 세월은 고장도 없네~.'

한 중년의 가수는 '청춘도, 사랑도 시간 앞에서는, 누구도 잡을 수 없다'는 가사의 노래 '고장 난 벽시계'에서 속절없는 시간을 애달프게 노래했다. 시간을 어느 누가 막을 수 있겠냐마는 예로부터 가는 세월에 대한 아쉬움을 담은 노래와 시구는 단골 메뉴였다.

"한 손에 막대 들고, 또 한 손에 가시를 쥐어,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은 막대로 치렷더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주럼길로 오매라."

'탄로가'에서 우탁이 읊은 흘러가는 시간이 올해만큼은 멈추게 생겼다.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한 행정기본법이 개정돼 6월부터는 만 나이를 쓰기 때문이다. 금년에는 한 살에서 두 살까지 덜 먹는다니 윤 대통령이 시간을 잡은(?) 남자로 기록될지 모를 일이다.

살아 낸 나이는 되돌릴 수 없겠지만 당장 나이를 먹지 않는다는 설렘에 지난 설 명절에는 '떡국'을 몇 그릇이나 비웠다. 나이 먹은 세월이 차곡차곡 쌓이다 보니 애써 한두 살 깎고 싶은 마음이야 매한가지 아니겠는가.

한 지인은 "독서는 시간을 늘리는 일"이라며 거창하게 상대성 이론까지 끌어온다. 책 속에서 얻은 배경 지식이 연산 작용을 극대화, 절대적인 시간을 상대적 시간으로 바꾼다는 것이다. 즉, 여러 사람이 같은 사물을 5분 동안 바라보더라도 독서량이 많은 이들은 더 많은 생각과 영상(연산 작용)이 떠오른다. 결과적으로 절대적 5분이 머릿속에서는 상대적 10분, 20분이 될 수 있다는 논리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독서하면 인생 백 년이 이백, 삼백 년이 된다는데 그 나름 공감이 간다.

이런 점에서 경북도청의 벽시계는 올해도 고장 나게 생겼다. 더디게 가거나, 시간을 되돌리는 '거리'가 많다.

얼마 전 도청 1층 로비에는 '미래 창고'란 이름의 도서관이 문을 열었다.

이철우 지사의 지시로 당직과 당직실을 없애고 그 자리를 책으로 채웠다. 미래 창고에선 누구나 마음껏 책을 빌려 읽을 수 있다. '공부하자, 변해야 산다'에서 시작된 화공(화요일에 공부하자)은 코로나19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이어와 200회를 훌쩍 넘겼다. 비공식적 특강과 부서별 공부 모임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아는 만큼 보이고, 읽고 익힌 대로 지식이 쌓여 사물을 바라보는 지적 시간이 늘어나는 인프라를 제대로 갖췄다.

좋은 책을 만나는 것은 훌륭한 스승을 만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했다. 책 속에는 필자가 겪은 다양한 경험과 오랜 기간 체계적인 연구를 통해 얻은 결과물이 함축적으로 담겨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독서는 시간까지 잡는다고 보태면 과장일까.

사색하기를 즐겼던 고대 그리스인들은 두 가지의 시간 개념을 이해했다.

하나는 크로노스(cronos)이고 다른 하나는 카이로스(kairos)이다.

크로노스는 일정하게 정해진 시간의 개념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의 '정해진 크기와 단위를 가진 시간'으로 이해하면 된다. 반면 카이로스는 '어떤 의미'를 가진 시간,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시간이라는 능동적인 해석이 따라붙는다.

윤석열 대통령은 법을 고쳐 정해진 시간인 크로노스를 늘려줬고 이철우 지사는 의미 있는 시간(카이로스)을 길게 하는 주변 환경을 계속해서 만들어내고 있다. 여하튼 고장 난 벽시계처럼 세월을 잡거나, 의미 있는 시간을 만들어낸다는 일이 새해 벽두를 유쾌하고 '땡큐'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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