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글로컬 시대의 생존과 협치] 포항의 시련과 재창조 비전

김정렬 대구대 교무처장
김정렬 대구대 교무처장

한국을 대표하는 신년 해돋이 명소는 한반도 최동단에 자리한 포항 호미곶이다. 강릉 정동진과 울산 간절곶이 경쟁자로 부상했지만 아직은 건재한 모습이다. 호미곶 일대는 반도를 연상시키는 웅장한 산세와 시원한 풍광이 압도적이다. 필자는 호미곶 남단이자 경주와의 접경인 구룡포 일원에 산재한 선장직영 횟집의 풍미를 느끼기 위해 겨울철 드라이브에 나서곤 한다.

토함산 자락과 형산강 줄기는 포항의 기회이자 제약요인이다. 고대에는 왕도 경주를 지키는 장벽과 물길로 기능했다. 근자에는 거대한 산군과 가파른 물길이 지진과 홍수 피해를 키웠다. 대구가 연이은 사고로 인해 재난도시로 각인되었던 것처럼 포항의 이미지 손상도 예상된다. 랜드마크 기업 포스코가 오염배출과 가동중단에 직면한 일도 우려된다.

포항시는 인구 50만으로 경북의 수위도시다. 자치행정을 담당하는 행정구와 읍면동이 다양하고 면적도 광활하다. 포항시 흥해읍이 고향인 이명박 대통령 시절에는 영포라인이 득세하고 지역개발이 촉진되는 후광효과도 누렸다. 하지만 굴뚝의 기세가 약화되자 인구도 정체된 상태이다. 반면에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의 무대로 알려진 포구나 장터처럼 수려한 문화관광 자산이나 포항공대가 주도할 영일만밸리의 산학연 역량은 재창조의 원천이다.

포항은 해안과 산군이 망라된 신흥 여행지이다. 호미곶 일출광장과 내연산 보경사라는 경관의 보고를 비롯해 운하와 제철소 야경을 품은 영일만과 형산강의 하모니도 매력적이다. 구룡포 과메기와 죽도시장 물회, 영일대 불꽃축제와 스페이스워크, 월포해수욕장과 장길리낚시공원의 힐링도 포항을 알리는 조연이다.

조선왕조실록이라는 생생한 기록에 근거해 부활한 장기유배촌은 스토리가 있는 역사관광지를 창출했다는 점에서 모범적이다. 구룡포와 감포의 중간지대 해변가 안쪽에 조성된 유배촌은 바다와 산골의 정취를 즐기며 돌아보기에 적합한 곳이다. 봄철 인근의 국도변에서 출렁이는 청보리의 군무도 운전자의 시선을 끌어당기기에 충분하다.

포스코 정문에는 '자원은 유한, 창의는 무한'이라는 슬로건이 적혀 있다. 창업 초기부터 견지한 경영의 핵심 원칙이다. 철강도시에서 생태도시로 변신한 일본 기타큐슈의 제철산업도 그린과 클린을 추가로 장착한 포항제철소가 학습할 대상이다. 포항시가 보스턴처럼 녹색기반을 강화한 일도 고무적이다. 하지만 산업도시 포항의 풍력이나 태양광 수준은 RE100이라는 재생가능 에너지 목표와는 거리가 있다.

찰스 랜들리는 <창조도시>의 원천으로 풍부한 상상력과 혁신적 방법론에 주목했다. 창조도시의 제도적 기반은 역동적 거버넌스이다. 공공, 비영리, 민간부문의 협력을 유도해 시너지를 창출해야 한다. 지역개발의 성공적 추진을 위해서는 중앙정부의 규제 혁신과 금융재정 지원은 물론 지역기업이나 지역사회와의 협력 유도가 절실하다.

도시재창조는 복합예술 장르의 창안을 연상시킨다. 신성장동력을 창출한 빌바오와 맨체스터처럼 도시 유전자를 개조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비전과 목표, 창의적 공간창출 역량, 시민 요구의 충분한 이해, 영감 유도와 인센티브 제공, 외부적 정책과 내부적 관리의 연계, 전통 자산의 재활용, 녹색 가치의 재발견 등이 필요하다.

미래를 선도할 창조적 전환은 싱가포르나 바르셀로나의 재도약 과정에 담겨 있다. 고용을 늘리고 기술을 혁신하며 주민을 결속한 일이 대표적이다. 상징적 건축물, 신재생에너지 확대, 편리한 대중교통망, 쇼핑과 오락의 명소, 사람을 모으는 광장, 참신한 기획이 돋보이는 축제 등이 핵심적 정책수단이다.

그동안 도민행복특강에 참여할 때마다 느꼈던 소회지만 포항시 평생학습원은 규모와 서비스 모두에서 선진적이다. 형산강 하구에 자리한 뱃머리평생교육관은 애플의 더블린 사옥을 연상시키는 수려한 건축물로 당구장, 노래방, 탁구장, 체력단련실, 컴퓨터실, 강의실 등이 입주해 그야말로 원스톱 토탈서비스를 제공한다. 또한 시는 경북행복학습마을 사업을 활용해 해병대 제1사단 청림마을 관사까지 살피는 포용성까지 발휘했다. 평생학습원은 군 장병들의 주경야독을 위해 중국어, 하모니카 등 야간 강좌 서비스를 제공하는 한편 토요 가족체험과 학습마을 축제를 개최해 군인 가족의 만족도까지 증진시켰다.

포항의 교통여건은 고속도로와 고속철도의 개통으로 진전된 상태이다. 산군의 초입 대구 팔공산IC에서 광활한 해안 영일만신항만을 한 시간 안에 연결하는 대구포항고속도로는 산맥의 파노라마와 서핑의 활력을 선사한다. 동해안 철도망이나 동해고속도로의 부분 개통으로 부울경 지역과의 접근성도 개선되었다.

포항의 신항만은 환동해권 해운망 개척의 선도자이다. 연오랑세오녀 설화나 울릉도 카페리가 시사하듯이 포항은 신라는 물론 동북권을 대표하는 항구로 자리해 왔다. 포항경주공항 개칭을 계기로 경북 남부권의 광역행정도 촉진될 것이다. 경주를 매개로 한국을 대표하는 양대 중공업 도시인 포항과 울산의 공조도 기대된다. 철강과 조선, 해운과 화학, 포항공대와 유니스트 등이 산출하는 시너지가 지역발전을 촉진할 것이다.

전기차 업체인 테슬라가 아시아 생산기지의 후보지로 한국을 꼽으면서 포항과 울산의 경쟁과 협력관계가 주목을 받고 있다. 포항시는 포스코 중심의 철판 공급망에 부가해 배터리 규제자유특구 지정으로 이차전지 기업과의 연계도 용이해졌다. 영일만 물류기반과 경주-영천-경산-대구로 이어지는 자동차 부품단지도 시너지 창출에 일조할 것이다. 나아가 국내 최대의 자동차 산업도시인 울산과의 공조가 이루어진다면 금상첨화이다.

김정렬(대구대 교무처장, 자치경찰학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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