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나라를 위해 떳떳하게 죽으라. 옳은 일을 하고 받는 형(刑)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다.'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가 중국 뤼순감옥에 수감된 아들 안중근에게 남긴 말. 단단하고도 의연했던 위대한 말이지만 그 속에 꿋꿋하게 감추고자 했던 아들을 잃는 어미의 슬픔이 어찌나 컸을까싶어 마음 한 구석이 찡하게 아려온다.
얼마 전 개봉한 안중근 의사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영웅'에서 당시 조마리아 여사의 애달픈 감정은 한층 더 드러난다. 조마리아 여사의 역을 맡은 배우 나문희 씨는 안중근 의사의 배냇저고리를 부둥켜 안고 눈물을 흘리는데, 단장(斷腸), 즉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고통을 표현해내는 얼굴에 아마 여러 관객도 함께 눈물을 훔쳤을 테다.
독립투사의 가족으로 산다는 것. 대의를 위해 나아가는 가족들을 묵묵히 떠나보내고, 믿으며, 기다릴 수밖에 없는 삶을 살았을 그들의 남은 가족들 역시 독립투사 삶만큼이나 박수 받아 마땅하다. 간간이 들려오는 생사 소식에 수 백 번 천국과 지옥을 오갔을 그 마음을 어느 누가 쉽게 헤아리랴. 일제의 잔인한 고문을 받은 독립투사 못지 않게 남은 가족들의 마음 역시 희망고문으로 문드러졌을 것이다.
중학교 도덕교과서에 수록된 '류명성 통일빵집'을 비롯해 탈북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써온 박경희 작가가 처음으로 역사소설을 펴냈다. 독립운동가 도산 안창호 선생과 그의 가족들을 조명한다. 안창호 선생에 관한 책은 많이 봐왔을테지만 독립투사의 가족의 이야기를 섬세하게 엮어낸 책은 처음이다. 그 중 저자는 안창호 선생의 장녀였던 '안수산'의 시점에서 아버지에 대한 내면을 풀어나간다.
'영원히 아버지를 갈망하며 살 것이라는 운명'
'모든 짐을 엄마에게 맡기고 떠난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안수산과 그의 형제들은 늘 아버지를 갈망했다. 아버지는 나라를 구한다며 자주 집을 비웠고 어쩌다 아버지가 집에 온 날에는 흥사단 조직원들이 집을 드나들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만인의 아버지라 어쩔 수 없다 위로 했지만 어린 나이의 수산과 형제들에겐 무엇보다 '우리만의 아버지'가 필요했다. 특히 낯선 미국에 삶의 터전을 잡은 수산의 가족에게는 미국의 '가족주의' 문화가 더 그를 괴롭혔다. 그래서 아버지 안창호를 갈망했지만 때론 원망했다.
수산이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는 건 머나먼 조국에서 아버지가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돼 온갖 고문을 받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받고서다.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독립투사의 딸로 살기 위해 학교에서 아버지의 독립운동과 조선의 상황을 알리면서 힘을 보탠다.
하지만 날아온 비보. 잦은 수감을 반복한 아버지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소식이었다. 조선으로 향하는 배편을 구해 오랜만에 그리운 아버지를 본다는 생각에 가족 모두는 들뜨지만, 일제의 감시를 받고 있는 안창호 선생이 더 위험해질 수 있다는 흥사단의 만류에 결국 가족의 희망은 물거품으로 돌아간다.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은 보고 싶은 가족을 보는 것도 흉이 되고 죄가 된다'
투병을 하던 안창호 선생도 자신을 보러 오겠다는 가족들에 행여나 함께 독립을 위해 나서는 동지에게 피해를 입힐까부터 걱정하는데 그 이야기를 들은 수산은 또 한번 절망한다. 독립투사이기 전에 나의 소중한 가족임에도 흔한 만남의 자유조차 허락되지 않는 게 이들의 삶이었다.
큰일을 하는 가족을 멀리 보내고 숱한 희망과 절망을 저울질하며 살아야했던 남겨진 이들의 짐은 어쩌면 짐작도 쉬이 못할만큼 꽤 무거웠을지 모른다. 죽음을 앞둔 아들을 담담히 떠나보낸 조마리아 여사처럼 안창호 선생 역시 조국을 위해 한몸 바칠 수 있었던 건 모두 그의 안위를 걱정하고 응원했던 가족들 덕분이었다.
결국 박 작가는 소설을 통해 이 말을 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위대한 인물에겐 위대한 가족이 있다고. 188쪽, 1만3천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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