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사랑이 나라를 망친다

조두진 논설위원
조두진 논설위원

군주가 지배하던 시대, 통치자는 임기가 없었다. 종신제로 대부분 죽을 때까지 권력을 행사했다. 통치자가 선정을 베풀면 다행이지만, 폭정을 자행해도 속수무책이었다. 권력의 횡포와 부패를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반정(反正) 또는 역성혁명(易姓革命)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그런 예는 드물었다. 백성들은 오랜 세월, 엄청난 고통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 시대 백성이 할 수 있는 일은 성군이 나타나기를 기원하는 게 전부였다. 삶을 운에 맡겼던 것이다.

현재 대부분 선진국들이 채택하고 있는 '민주공화제'는 임기가 정해진 통치자를 국민이 직접 선출하고, 선출된 통치 권력을 비판적 시선으로 평가하는 제도다. 삶을 운에 맡기지 않고 의지로 가꾸는 것이다. 민주공화제의 근간은 정치인에 대한 불신과 검증이고, 민주공화제의 힘은 투표를 통한 '응분의 처분'에서 나온다. 정치인을 사랑한 나머지 검증도 응분의 처분도 내리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무용지물이 된다.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퇴색하고 있다. 특정 정치인에 대한 무조건적 믿음과 사랑으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지지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어났다. '우리 이니 마음대로 해'를 외치던 '대깨문', 여러 범죄 혐의로 측근 구속기소, 본인 소환조사를 받고 있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열렬히 지지하는 '개딸', 온갖 편파 방송으로 사회를 어지럽히는 극우, 극좌 유튜버들이 그런 예다. 이들은 자신들이 지지하는 정치인의 범죄조차도 용인하는 경향이 있다. 옛날 왕이나 목민관이 자기 양심의 기준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이 곧 '법'이었던 중세적 사고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동양에서, 특히 유교권 국가에서 성문법 발달이 늦었던 것은 지도자의 인성에 크게 의지했기 때문이다.

'진영'에 빠져 특정 정치인 또는 특정 정치세력을 무조건 지지하고, 다른 쪽을 무조건 혐오하면 그 사회는 타락한다. 역설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사회의 평화와 질서를 지키는 힘, 국가를 번영으로 이끄는 힘은 정치인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불신'이다. 정치 지도자는 국민이 사랑할 대상이 아니라 감시하고, 따지고, 응분의 처분을 내릴 대상이다. 2023 계묘년(癸卯年)에는 우리 사회가 '진영 덫'에서 벗어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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