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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속으로] 엄마가 버린 신생아…"제발 살아만 있어라" 달려간 사람은?

출산 후 변기 방치 20대 징역 4년, 살리려던 친구는 무죄
4시간여 변기 물 속에… 저체온증, 영양공급 부실로 끝내 사망
엄마는 자느라 전화도 안받아…친구는 괴로움에 자해시도도
재판부 “이미 힘든 시간 보내…너무 죄의식 갖지 말라” 위로

대구법원 본관. 매일신문DB
대구법원 본관. 매일신문DB

지난해 3월 11일 저녁 어스름, 택시 한대가 경산의 한 원룸 건물 앞에 멈춰섰다. 아직 앳된 얼굴의 20대 여성이 택시에서 내려 정신 없이 건물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제발 살아만 있어라'

택시에서 내린 여성은 차가운 변기물 속에 '핏덩이'로 남겨진 신생아를 번쩍 안아 들었다. 4시간이 넘게 방치됐던 아이를 따듯한 물로 씻기고 두꺼운 옷으로 감싸 품에 안았다. 아이를 돌봐야 할 생모는 남자친구를 만나러 영천으로 떠난 상태였다.

갓 태어난 신생아를 변기 속에 방치해 죽이려 한 20대 여성에게 징역형이, 아이를 구하려 했으나 지키지 못한 다른 20대에게는 무죄가 선고됐다.

대구지법 형사11부(이상오 부장판사)는 영아살해미수로 재판에 넘겨진 A(22)씨에게 징역 4년을, 영아유기치사 혐의를 받은 B(22)씨에게는 무죄를 선고했다.

A씨가 원치 않는 아이를 임신한 것을 확인한 것은 2021년 7월말이었다. 아이 친부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웠던 나머지 낙태시도도 못하고 임신 35주차에야 불법 낙태약을 먹었다. 인터넷으로 수소문해 구한 낙태약은 아무런 약물 성분이 없는 가짜약이었다.

이듬해 3월 11일 오전부터 진통이 시작됐다. 낙태약 때문에 사산할 줄 알았던 아이는 움직이고 있었다.

오후 3시 7분 아이가 세상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아기는 엄마 품에 안기기는커녕 차가운 변기물 속으로 버려졌다. 아이를 키울 생각이 없던 A씨는 변기 뚜껑까지 닫은 채 아이를 2시간 넘게 방치하다 집을 나섰다.

아이를 구하기 위해 나선 건 A씨의 친구 B씨였다. 출산 사실은 알고 있었으나 A씨가 아이를 변기에 버려둔 채 외출까지 한다는 소식을 듣자 더 이상 모른척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대구 북구에 살던 B씨는 택시비가 없어 지인에게 돈까지 빌려 발걸음을 재촉했다. 택시를 타고 가는 도중에는 A씨에게 '살아만 있길 빈다. 제발 살아만 있어달라'는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B씨는 오후 7시 30분쯤 A의 집에 도착해 변기 속 아기를 꺼냈다. A에게 전화해 보일러를 키는법까지 물어가며 아이를 온수에 씻기고 두꺼운 후드 티셔츠로 감싼 뒤 대구 북구에 있던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왔다.

B씨는 아기에게 담요를 덮고 전기 장판 위에 올려 놓고, 물 반 숟가락을 입에 넣어주고 간헐적으로 체온을 쟀다. 아기의 체온도 10~15분 간격으로 잰 결과 34.1도였던 체온이 35.1도까지 차츰 올라가는 것을 확인했다. 다만 A씨가 낙태를 시도한 사실이 드러날까봐 두려워 119신고를 하거나 아기를 응급실로 긴급 후송하지는 못했다.

분유를 주려는 시도도 했으나 분유를 사달라 부탁을 받은 사람이 오지 않고, 마트가 문을 닫으면서 다음날로 미뤄졌다. B씨는 자신의 친구 3명을 집으로 불러 아기를 밤새 돌보려 했고, 다음날 아르바이트 시간에는 아기를 대신 돌봐 달라는 부탁도 했다.

그러나 이미 4시간이 넘게 변기에 방치돼 있어 심각한 저체온 상태에 있던 아이는 어느 순간 울음을 그치고 미동도 않았다. 심폐소생술도 소용이 없었다. 아이는 그날 오전 3시 57분쯤 사망했다.

B씨는 아기가 죽은 사실을 알자 공황상태에 빠져 울면서 소리를 지르고 자해행위를 하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A씨는 이날 오전 2시쯤부터 연락마저 완전히 끊고 잠에 빠져 있었다.

재판부는 A씨를 꾸짖고 B씨에게는 위로의 말을 건넸다.

A씨에게 "새 생명이 무참히 사망했다. 아이를 변기에 낳고 뚜껑까지 닫아 사망케 하고자 시도했다. 본인이 걱정했던 사정도 보이지 않는다"고 지탄했다.

B씨에게는 "엄마가 버린 아이를 적극적으로 살리고자 했던 것 같다. A씨의 범행에 연루됐을 뿐 아주 많이 착한 사람"이라며 "후회는 남을 수 있지만, 이미 너무 힘든 시간을 보냈기에 너무 죄의식을 갖지 말라. 스무살짜리의 미숙한 판단이 이런 결과를 초래했다고 본인의 행동이 비난받을 행동은 절대 아니다"고 강조했다.

선고공판이 열리는 내내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B씨는 법정에서 자신의 손등을 손톱으로 쥐어 뜯는 등 괴로워했다. 선고가 끝난 뒤 법정을 떠나는 B씨의 눈에서는 닭똥같은 눈물이 뚝뚝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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