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객석에 닿지 못하고 져버린 '불멸의 사랑'…뮤지컬 '베토벤'

스타 창작진·호화 캐스팅으로 기대 모은 창작 초연 뮤지컬
배우들 열연에도 빈약한 줄거리·음악으로 설득력 잃어버린 사랑 이야기

19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열린 뮤지컬
19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열린 뮤지컬 '베토벤' 프레스콜에서 출연 배우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위대한 음악가에게는 그만큼 위대한 사랑이 있었을까.

뮤지컬 '엘리자벳', '레베카' 등을 만든 뮤지컬 거장 작곡가 르베이와 극작가 쿤체가 7년 만에 내놓은 신작 '베토벤'은 수백 년간 인류에게 사랑받아온 베토벤의 음악을 완성 시킨 것은 그가 말년에 만난 한 여인과의 사랑이었을 것이라는 상상력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지난 12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세계 초연으로 개막하며 올해 상반기 최대 기대작 중 하나로 주목받았다.

생전에도 이미 뛰어난 음악가로 인정받았지만 괴짜 같은 행동과 말투, 완벽주의적인 성향으로 평생을 외로움 속에서 보낸 베토벤. '사랑은 욕망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던 그의 마음의 벽을 허문 건 귀족 여인 안토니 브렌타노(토니)였다. 토니를 만난 뒤 베토벤의 음악 세계는 더욱 넓어지고, 청력 상실이라는 장애에도 지금까지 써왔던 어떤 곡보다도 위대한 음악들을 써 내려간다.

음악계에서 신화적 인물로까지 여겨지는 베토벤을 남녀 간 사랑의 주인공으로 내세운 데에는 나름의 역사적 근거가 있다. 베토벤의 실제 유품에서 발견된 어느 '불멸의 연인'을 향한 편지 한 통에서 출발한 이야기로, 극에 등장하는 안토니 브렌타노 역시 베토벤과 만났을 것으로 추정되는 실존 인물이다.

문제는 역사의 빈 자리를 채우는 상상력의 촘촘함이다. 창작 초연임을 감안 하더라도 화려한 창작진과 배우들의 면면에 비해 아쉬운 이야기의 개연성은 베토벤이 노래하는 '불멸의 사랑'을 공허한 외침에 그치게 한다.

위대한 음악가에게 영감을 준 위대한 사랑의 과정을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극 중 베토벤과 토니는 별다른 감정의 흐름 없이 한순간에 사랑에 빠져 버린다. 이후 작품은 사랑에 빠진 베토벤의 변화와 이들이 사랑의 장애물을 극복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

토니는 베토벤의 허름한 겉모습을 보고 무시하는 귀족들과 달리 그의 음악을 존중하는 사려 깊은 여인으로 나오지만 이미 베토벤이 아닌 다른 남성과 결혼한 신분이다. 그런데도 높은 도덕성을 지닌 베토벤이 토니와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관객에게 납득시킬 만큼 섬세한 감정선은 무대 위에서 드러나지 않는다.

'운명' 교향곡, '월광' 소나타 등 베토벤의 명곡들을 뮤지컬 노래로 재탄생시켜 기대를 모았던 곡들도 부족한 개연성을 메우기에는 부족하다는 인상을 준다. 풍성한 기악 연주로 듣던 베토벤의 곡에서 선율만 따온 넘버들은 박효신, 박은태, 카이, 옥주현 등 베테랑 배우들의 뛰어난 가창력에도 원곡의 힘을 반감시켰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그렇다고 이 작품의 장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베토벤이 사랑에 빠지며 마음의 벽이 부서지는 과정을 실제 무대 벽이 열리는 것으로 시각화한 무대와 베토벤의 음악을 '음악의 혼령'으로 의인화해 현대적인 안무로 시각화한 연출 등 볼거리는 풍성하다. 프라하의 카를교를 무대 위로 옮겨온 듯한 실감 나는 무대 장치 역시 탄성을 자아낸다.

위대한 작곡가이기에 앞서 어린 시절 아버지의 학대와 자신의 가치를 무시하던 귀족들과의 대립 속에서 고통받던 인간 베토벤이라는 매력적인 소재도 향후 발전 가능성에 대한 기대를 품게 한다. 자신의 상처와 아픔을 승화시킨 음악으로 많은 이들에게 위로를 전했지만 정작 자신은 천재 음악가라는 숙명에 갇혀 평범한 삶의 행복을 누리지 못한 베토벤의 삶은 그 자체로 감동을 안겨준다.

출연하는 작품마다 '매진 행렬'을 기록해 온 박효신, 옥주현, 박은태, 카이, 조정은 등 정상급 배우들의 열연도 관객의 기대를 배신하지 않는다. 덕분에 '베토벤'은 27일 기준 공연 예매 사이트 인터파크에서 7.0이라는 비교적 낮은 평점에도 불구하고 예매율은 뮤지컬 1위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공연은 3월 26일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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