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육군2군단 상주서 창설…6·25때 평양도 점령했다

쌍용부대 상주 함창중·고서 탄생, 20년간 자매결연 병영체험, 국군 최초 압록강 초산 진격. 육군의 성지 평가 더욱 부각
"육군 선배 전우들 이룩한 소중한 명예와 전통 상주서 계승" 대구 군부대 유치 사활 걸어..

육군이 지난 2010년 2군단 창설 60주년 행사를 최초 창설지인 경북 상주 함창중·고에서 개최하고 있다. 함창고 제공
육군이 지난 2010년 2군단 창설 60주년 행사를 최초 창설지인 경북 상주 함창중·고에서 개최하고 있다. 함창고 제공

"무적 쌍용부대로 유명한 육군2군단이 경북 상주 함창중·고등학교에서 창설됐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경북 상주시가 대구 군부대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는 가운데 육군2군단이 상주에서 창설, 최초 주둔지였으며 6·25 전쟁 때 평양도 점령했던 사실이 구체적으로 확인돼 육군의 성지라는 평가가 더욱 부각되고 있다.

그간 상주의 호국역사는 육군의 정신적 지주로 평가받는 임진왜란 정기룡 장군의 무패신화, 한국전쟁 육군 첫 승리 화령장전투 등 정도였지만 육군2군단까지 태어난 곳이라는 사실은 지역민들에게조차 잘 알려지지 않았다.

육군이 지난 2010년 2군단 창설 60주년 행사를 최초 창설지인 경북 상주 함창중·고에서 개최하고 있다. 함창고 제공
육군이 지난 2010년 2군단 창설 60주년 행사를 최초 창설지인 경북 상주 함창중·고에서 개최하고 있다. 함창고 제공

◆상주 함창중·고에서 태어난 쌍용부대

육군2군단과 상주 함창중·고등학교 등에 따르면 쌍용부대는 6·25 전쟁 초기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후퇴한 6사단과 8사단 예하병력을 토대로 1950년 7월 15일 상주 함창중·고등학교에서 창설했다. 함창중·고교는 1948년 개교했다.

상주가 국토와 군사전략상 최고의 중심지이고 농축산물 수확량이 풍부해 식량조달 등이 용이했기 때문이라는 게 창설 배경이었다고 한다.

이후 낙동강 방어전선에 투입된 2군단은 문경, 안동, 영천, 다부동지구 전투에 참가해 적의 공세를 효과적으로 방어했다.

특히 평양 점령작전 성공에 이어 국군 최초로 압록강 초산까지 진격한 부대로 유명하다.

6·25 전쟁 중 36회의 전투에 참가해 적 사살 11만2천 명, 포로 5천명, 적 장비 8만여 점을 노획하는 전공으로 '불패의 쌍용부대' 신화를 창조했다.

전쟁 이후인 1955년 4월 강원 춘천으로 자리를 옮겨 현재 중동부 전선의 최정예 야전군단으로 발돋움했다.

지난 2002년 상주 함창중·고등학교와 육군2군단이 자매결연을 체결하고 있다. 함창고 제공
지난 2002년 상주 함창중·고등학교와 육군2군단이 자매결연을 체결하고 있다. 함창고 제공

◆함창중·고-쌍용부대 현재까지 교류 이어져

이런 계기로 육군2군단은 2002년 함창고와 자매결연을 맺었으며, 2004년부터 해마다 특공연대로 학생들을 초청해 병영체험을 하고 있다.

특히 2군단은 지난 2010년 군단 창설 60주년 행사를 최초 창설지인 함창중·고에서 가졌을 만큼 의미를 높게 평가하고 있다.

당시 오정석 군단장은 기념사에서 "선배 전우들이 이룩한 소중한 명예와 전통이 상주땅에서 시작됐다"며 "이를 가슴 속 깊이 되새겨 강한 대한민국 육군을 만드는 데 온 힘을 다하자"고 밝히기도 했다.

지난해 병영체험 때 2군단의 초청을 받아 직접 방문했던 주대중 함창중·고 재단이사장은 "2군단 관계자들은 상주가 후방의 군부대 입지로는 최적지 아니냐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정기룡 장군·화령장전투 불패신화 닮은 꼴

쌍용부대의 불패신화는 상주 출신 정기룡 장군의 63전63승 무패신화와 대한민국 육군의 첫 승리 화령장전투를 떠올리게 한다.

상주는 대한민국 육군의 표상이자 '육지의 이순신'인 충의공 정기룡 장군의 얼이 깃든 곳이다.
정기룡 장군이 상주를 중심으로 임진왜란, 정유재란 당시 세운 무패의 전과는 우리나라 육군 전쟁사에 길이 남을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한국전쟁 당시 상주 화령장전투의 승리는 최후의 보루였던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하고, 인천상륙작전을 통해 서울 수복과 연합군 반격의 발판을 제공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상주는 고려시대에도 호국의 중심이었다. 몽고 침입 때는 지역민과 승려들이 힘을 모아 몽고 기병 5천 명과 보병 4만5천 명을 몰아냈다. 육군 역사상 역전의 전투역사가 가장 많은 호국충절의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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