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통령들은 해외 순방을 마치고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해, 상공을 세 번 돌고 착륙한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니다. 곧바로 착륙하자니 아쉽기 때문이다. 대통령들은 그만큼 해외 순방을 사랑한다. 국내에 돌아오면, 골치 아픈 문제가 잔뜩 기다리고 있다. 해외 순방은 꽃길이다. 골치 아픈 문제도 없고, 융숭한 대접에 절로 가슴이 펴진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월 14일부터 나흘간 아랍에미리트(UAE)를 국빈 방문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을 맞는 UAE의 의전에 입이 딱 벌어졌다. 푸른 페르시아만을 끼고 힌 대리석으로 축조된 UAE 대통령궁 카사르 알 와탄은 화려하고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윤 대통령의 탑승 차량이 대통령궁에 들어서자, 7대의 비행기가 하늘에서 빨강, 파랑 태극기 색 연기를 내뿜으며 에어쇼를 벌였다. 왕궁 입구에서 본관까지 까마득한 연도에 낙타병과 기마병, 환영 인파가 촘촘히 늘어섰다. 대통령궁 본관의 아름다운 홀에서는 의장대 사열이 장엄하게 거행되었다.
이럴 때 듣는 애국가 연주는 절로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대통령의 가슴에는 더욱 애국심이 솟구쳤을 것이다. 해외에 나가면 사실 대통령보다 코이카(KOICA, 한국국제협력단) 이사장의 인기가 더 높다. 해외원조를 관장하니 당연하다. 한국은 2차대전 후 독립한 국가 중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올라선 유일한 국가다. 국력이 커지고 국격이 올라가니, 한국 대통령에 대한 대우도 덩달아 융숭해진 것이다.
그러나 국제무대에는 공짜 점심이 없다. 화려한 사교장처럼 보여도, 실은 국가들의 이익이 치열하게 부딪히는 총성 없는 전장이다. 대통령이 성대한 의전에 정신줄을 놓으면 안 된다. 작년 5월 방한한 바이든 미 대통령은 첫 일정으로 평택의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찾았다. 2박 3일의 방한 기간 중 정상회담을 제외한 모든 일정이 기업행사로 채워졌다. 한국 대통령보다 더 적극적으로 한국 기업가들을 만났다. 한국의 10대그룹 총수와 6개 경제단체장을 만나고, 마지막 날은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을 만났다. 공식연설에서는 어김없이 대미투자를 세일했다. 현대차는 50억 달러의 추가 투자를 약속했다. 세계 최강국인 미국 대통령의 해외순방이 이렇다.
윤 대통령은 이번 순방에 추경호 경제부총리를 비롯해 100여 명의 기업인들로 구성된 경제사절단을 대동했다. 모하메드 UAE 대통령은 300억 달러 규모의 통 큰 대한 투자로 화답했다. 작년 외국인 직접 투자액이 304억 달러였으니, 윤 대통령은 어마어마한 선물을 받았다. 물을 마실 때는 우물 판 사람을 기억해야 한다. 2009년 UAE 원전 건설을 수주하고, UAE와 깊은 인연을 맺은 게 이명박 전 대통령이었다. 애초 원전 건설을 둘러싼 승부의 추는 프랑스로 완전히 기울었다. 그런데 UAE가 돌연 한국에 맡기기로 결정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여러 차례 전화기를 붙들고, 현 대통령인 모하메드 왕세자를 끈질기게 설득한 덕분이었다.
UAE는 본래 유목민 베두인족이 사는 모래뿐인 나라였다. 그러나 모래 밑에 세계 7위 규모의 석유가 매장되어 있었다. 2022년 1인당 GDP는 약 4만8천 달러로, 세계 19위이다. 한국보다 11위나 높다. 하지만 석유는 수십 년 뒤 고갈된다. 그래서 UAE의 미래에 가장 중요한 일은 포스트 오일시대를 준비하는 것이다. 또한 페르시아만 건너 이란과 영유권 분쟁을 겪고 있다. 같은 이슬람교지만 UAE는 수니파, 이란은 시아파다. 그래서 UAE는 프랑스와 방어조약을 맺고, 프랑스 군사기지가 수도 아부다비 인근에 있다.
UAE는 이런 상황을 모두 고려해, 200억 달러 규모의 원전 건설을 계획하고, 2009년 프랑스에 맡기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이명박 전 대통령은 포스트 오일 시대의 준비와 함께 안보, 교육, 기술협력이 절실한 UAE의 국가적 필요를 정확히 파악하고, 적극적인 협력을 약속했다. 뿐만 아니라, 정서와 감정, 우정을 중시하는 아랍인 특유의 문화를 잘 활용하여, "형제의 국가 관계를 맺자"고 제안했다. 모하메드 대통령은 이번 윤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한국은 제2의 고향"이라고 깊은 애정을 표현했다. "40년 형제애를 토대로 100년 동반자가 되자"는 슬로건도 그렇게 나온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지도자의 덕목으로 서생의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을 꼽았다. 하지만 시장을 모르고, 경영을 모르고, 세계가 얼마나 넓은지 모르는 정치지도자가 많다.(김영환 충북지사) 문재인 정부에서 그런 인물들을 싫도록 보았다. 대통령은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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