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탄생의 배경에는 산업화와 도시의 발달이라는 시대적 배경이 있다. 영화 평론가인 백정우 저자는 "영화가 주는 감흥과 충격을 오래도록 유지시키는 일, 그 일을 제대로 하는 사람이 나였으면 좋겠다"고 표명했다.
"사회생태학 개척자 머레이 북친(Murray Bookchin)은 스스로 존재하는 자연을 1차 자연(first nature), 도시 마을과 같이 인간화된 혹은 사회화된 자연을 2차 자연(second nature)이라 불렀다." 시대의 공기를 보여주는 것으로 도시만큼 적절한 재료는 없다고 했다.
프롤로그를 따라가는 도시(제천, 함평, 인천, 군산, 영월, 삼척, 옥천, 파주, 춘천, 울산, 소성리, 거제, 부산, 대구)는 한국영화가 사랑한 도시, 도시가 만난 영화이다. 도시는 영화의 완성도를 높여주며 영화는 도시의 숨은 이야기를 찾아낸다. 진실은 결코 멀리 있지 않음을 느끼게 한다.
공간은 사람을 규정하고 사회적 위치를 대변한다. 어디에 있느냐, 어느 곳에 사느냐에 따라 인식과 대접이 바뀐다. 정재은 감독의 데뷔작 〈고양이를 부탁해〉는 변두리의 질박함을 부탁하는 인천에서 꿈과 희망과 낭만으로 채색된 청춘의 판타지와 토사물처럼 어그러진 현실을 보여준다. 부패는 발효를 말하는 것이리라.
영화는 곧잘 소박한 민심과 자연이 풍겨내는 위대한 힘을 캐스팅하며 한 축을 맡겨버리곤 한다. 자신을 꼭 닮은 허물을 벗어두고 퍼드덕 날아오르는 매미의 첫 울음처럼, 변두리의 삶도 아름답게 꽃피울 수 있다는 것을 영화는 보여준다. 이러한 변두리의 영화적 힘은 겸허한 진정성에서 나옴을 알 수 있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느냐고 묻지 말자. 사랑의 감정도 시간이 흐르면 변한다. 계절이 바뀌고 또 다른 계절이 오듯, 사랑도 그렇게 간다는 것. 봄날이 가고 겨울이 오면 또 다른 사랑이 올지도 모를 일이다."(57쪽) 삼척의 숱한 명소를 마다하고 대숲과 해수욕장에 카메라를 들이댄 까닭이다.
도시마다 숨 쉬고 있는 영화들은 시대와 공간을 수렴한다. 가난의 곡선에 애잔하게 꿈틀거리는 무언의 그리움, 아름다움은 늘 비애와 함께한다. 바람이 낙엽을 몰고 다니는 계절이다. 여름의 팽팽했던 푸름은 몸속에 숨겨두고 책 속의 도시들을 건너도 좋으리라. 도시가 캐스팅한 영화 속에는 잿빛의 얼룩과 제 빛깔을 닮은 하늘이 맞물려 있다.
정화섭 학이사독서아카데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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