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섭게 추위가 몰아치던 1월 초에 하은, 예은이 자매가 병원을 방문했다. 어릴 적 3, 4살 때부터 해서, 3년인가, 천식으로 고생하며 입원과 외래 치료를 했던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이 얼마나 밝고, 조잘조잘 말도 잘 하던지, 엄청 귀여웠던 기억이 있었다. 긴 생머리를 예쁘게 땋았으며, 피부색은 약간 연한 검은색이었고, 엄마를 많이 닮은 것처럼 보였다. 엄마는 캄보디아 분이셨는데, 성격도 좋고 한국말도 잘 하고, 유쾌한 분이셨다. 그 이후로는 건강해져서 병치레를 덜 했는지, 모르겠지만 3년 동안은 병원에 방문한 적이 없었지만 한 번씩 생각나는 아이들이었다.
오랜만에 아이들을 보니 무척 반가웠다. 나이를 물어보니 초등학교 5학년과 3학년이었다. 심한 감기 증상만 있었지, 천식이나 폐렴 소견은 보이지 않았다. 옛날에 병원에 온 거며, 입원한 것을 물어보니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고 하였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건지 잘 모르겠지만, 예전과는 다르게 말수도 줄고, 어릴 적의 밝은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이들을 진료실에서 내보낸 뒤, 함께 온 엄마에게 애들에 대해 물었다. 처음에는 주저하시더니,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학년이 점점 올라갈수록 말이 줄어들고, 친구들도 없다고 하셨다. 말도 잘하고, 똑 부러져 보여 별문제 없을 줄 알았는데, 친구들과 어울려 놀지 못하고, 친구들이 피부색이며, 생김새로 자꾸 놀려 학교에 가기 싫다고 종종 얘기한다고 하셨다. 나갔던 하은이, 예은이를 불러서 친구들이 잘못하고 있는 거라고, 학교 선생님께 얘기드려보라고, 그리고 씩씩하게 이겨내야 된다고 말하며 아이들을 돌려보냈다. 진료실을 나가는 아이들과 엄마를 바라보며 답답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다문화가정이란 서로 다른 국적 또는 문화의 사람이 만나 구성된 가정을 말하며, 한국이란 나라에 국한해서 정의한다면, 부모 중 한쪽이 한국인으로 구성된 가정을 말한다. 2011년부터 2019년까지 통계를 보면 한 해 약, 2만에서 3만례의 다문화가정이 생겼다. 보통 아내가 외국인일 확률이 남편이 외국인일 확률보다 3배 정도 높으며, 이 경우 남편과의 나이 차이가 많았다. 대도시보다는 농어촌 지역에서 다문화가정의 비율이 월등히 높았다. 2020년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다문화 가정의 출생아 수는 1만6천421명이였으며, 2012년 2만 2천908명을 기록한 뒤로 점차 감소하고 있다. 다문화 가정의 출생아 수는 줄고 있지만,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꾸준히 느는 추세로, 전체 출생아 수 대비 6% 정도이다. 현재, 전체 유치원이나 초·중·고등학교에 다니는 다문화 학생 수는 약 16만명 정도로 해마다 꾸준히 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편견으로 얼룩져 있다. '다문화가정 학생의 학교 괴롭힘 피해 경험과 심리 문제의 관계'의 논문에서 이화여대 오인수 교수는 다문화가정의 학생들이 일반 학생들에 비해 왕따 등의 괴롭힘에 더 많이 노출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문화가정 아이들은 일반 학생들에 비해 우울, 불안, 사회적 위축 및 정체감 혼돈 등의 심리 문제를 많이 겪는 경향이 있다고 하였다. 물론, 일반 학생들과 잘 어울리고, 학업 성취도도 좋은 다문화가정 아이들이 있긴 하지만, 다수의 아이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 원인은 학습 부진과 부족한 한국어 실력이다. 하은이, 예은이 엄마는 열심히 한국어를 배워서 유창하게 구사하지만, 외래에서 만난 다문화 가정의 엄마들은 다수가 한국말이 서툴렀다. 엄마가 서투니, 2, 3살 아이들의 언어 발달이 늦을 수밖에 없고, 언어발달이 늦으니 학업 부진과 교우 관계 어려움의 악순환을 돌게 된다.
또 하나는 피부색이나 생김새의 차이들로 인한 친구나 한국인 부모들의 차별이다. 각종 조사에 따르면 다문화 가정 아이들의 학업 중도 이탈율이 일반 가정보다 네 배 이상 높다고 한다. 한국의 다양성 포용도 지표는 전 세계 27개국 중 26위로 최하위 수준이다. 우리가 배경과 문화, 인종이 다른 사람들에게 얼마나 폐쇄적인지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현재, 단일 민족이었던 한국은 과거의 이야기이고 다른 배경과 문화, 인종들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지, 차별해서는 안 된다.
여전히 다문화 가정을 이방인이라고 여기는 우리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미국처럼 다양한 인종이 뒤섞여 사는 국가에는 다문화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 다문화가정, 그리고 다문화 자녀들도 사회를 구성하는 떳떳한 구성원으로 함께 살아야 할 우리의 친구며 이웃이다. 우리의 차별 어린 시선이 사라져, 하은이, 예은이에게 좋은 친구 한 명이 꼭 생기기를 기대해 본다.
이동원 대구파티마병원 소아청소년과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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