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한국의 핵무장 가능한가

장동희 전 주핀란드 대사(전 주제네바 군축대사)

장동희 전 주핀란드 대사
장동희 전 주핀란드 대사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월 11일 열린 외교부 국방부 업무보고에서 "우리가 자체 핵을 보유할 수도 있다"고 언급함으로써 핵무장에 대한 논란이 뜨거워지고 있다. "북핵 문제가 더 심각해지면"이라는 단서를 달기는 했지만, 한국 대통령이 핵무장 가능성을 언급했다는 점에서 국제적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1월 30일 최종현학술원이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자체 핵 개발이 필요하다고 답한 응답자가 77.6%에 달했다고 한다. 그러면 우리나라는 과연 자체 핵무장이 가능한가? 이에 답하기 위해서는 기술적 능력, 국제법적 문제, 국제 정치경제적 상황으로 나눠 검토해 봐야 한다.

첫째, 한국은 자체적으로 핵무기를 제조할 기술적 능력이 있는가? 핵무기는 플루토늄을 이용하거나 우라늄을 95% 이상으로 농축하여 만들 수 있다. 플루토늄은 원전 가동 후 나온 '사용 후 핵연료'를 재처리하여 얻을 수 있다. 현재 우리 원자력 분야 과학기술 수준에 비춰 마음만 먹으면 재처리 방식이든, 우라늄 농축 방식이든 기술적으로는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아직 재처리 시설이 없기 때문에 이를 갖추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둘째, 우리나라는 핵확산금지조약(NPT) 당사국으로서 핵무기 생산이나 획득을 할 수 없다. 우리의 모든 원자력 관련 활동은 국제원자력기구(IAEA) 안전조치협정에 따라 IAEA의 사찰을 받게 되어 있다. 물론, 우리나라는 북한의 6차에 걸친 핵실험과 핵무력정책법 발표, 선제 핵 타격 위협 등으로 우리나라 '최고의 이익'이 위협받고 있다고 주장하며, NPT 10조에 따른 NPT 탈퇴를 선언할 수 있다. 그러나 국제사회가 이를 순순히 용납할지는 의문이다. 다음으로 한미 원자력협정 문제다. 2015년 협정 개정으로 한미 양국이 플루토늄 산출이 적은 건식재처리방식(파이로프로세싱) 공동 연구와 20% 미만의 우라늄 농축을 양국 간 협의, 추진 가능토록 합의하였지만, 이 모두 미국 측 동의 없이는 추진이 불가능하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가 일방적으로 NPT 탈퇴를 선언하고 자체 핵 개발을 추진할 경우 어떤 상황이 발생할 것인가? 탈퇴 요건 충족 여부에 대한 논란은 차치하고, 유엔 안보리는 우리나라의 NPT 탈퇴를 '국제 평화에 대한 위협'으로 결론짓고, 유엔헌장 41조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제재를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원유를 비롯한 에너지원을 거의 전적으로 해외에 의존하고,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나라가 국제사회의 제재를 극복할 수 있을지는 대단히 의문스럽다.

윤 대통령의 핵 보유 발언에 대해 미 정부는 "한반도 비핵화가 미국의 공식 입장"이라며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북한의 핵 능력이 고도화됨에 따라 미국 내 분위기도 다소 변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미국의 3대 싱크탱크 중 하나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지난달 18일 펴낸 보고서를 통해 미국의 확장 억제 강화와 이를 위해 전술핵 재배치 가능성에 대비한 기초 작업 개시를 권고했다. 이는 그동안 금기시되었던 한국 내 핵 반입이라는 선택지가 '생각해 볼 수도 있는 대안'으로 부상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장의 자체 핵 개발은 어렵겠지만, 미국의 전술핵 도입을 포함한 확장 억제 강화를 위한 기민하고 현명한 외교가 어느 때보다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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