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책] 오늘도 별일 없었어요

캐스린 니콜라이 지음·허형은 옮김/ 문학동네 펴냄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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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스린 니콜라이 지음·허형은 옮김/문학동네 펴냄
캐스린 니콜라이 지음·허형은 옮김/문학동네 펴냄

리틀 포레스트, 윤식당, 여름방학, 효리네 민박….

몇 년 전부터 스크린에 힐링 콘텐츠 열풍이 불었다. 프로그램 속 출연진의 목표는 단 하나. 잘 먹고 잘 자고 잘 노는 것. 무던하게 흘러가는 일상을 지켜보는 게 시청자의 일이었는데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계절의 날씨를 온전히 느끼고, 제철 농작물로 만든 음식을 좋아하는 이들과 나눠먹고, 포근한 이불에서 잠을 자는 모습은 현실에 치여 쫓기듯 살고 있는 우리에게 위로를 선사했다.

그래서인지 아직까지 치열한 삶에서 어떤 '쉼'이 필요할 때 몇 년 전 봤던 힐링 콘텐츠를 틀고, 또 틀고, 다시 트는 이들이 많을 지도 모른다. 고백하건데 애청자였던 기자 역시 그렇다. 일터에서 집으로 돌아와 'ON'에서 'OFF'모드로 전환이 필요할 때 지겹도록 봤던 프로그램들을 다시 튼다. 희한한 건 수없이 같은 장면, 같은 일상을 봐왔어도 지겨움은 없고 마치 TV 속 일상에 내가 있는 듯 그 자체로만으로도 휴식을 찾게 된다.

무탈한 일상을 살아내는 것. 무던한 일상에 온전히 집중하는 것. 언뜻 쉬운 일처럼 보이지만 사실 '무탈'을 손에 쥐고 사는 건 천운을 타고 난거다. 무탈하지 않은 사회다. 하루가 멀다하고 의문투성이인 사건·사고가 가득하고 불의의 사건사고로 소중한 이들을 잃은 누군가의 삶은 송두리째 휘둘린다. 열심히 흔들리다 얻은 간절한 바람은 단 하나. '평범함'. 그저 사랑하는 사람과 아무 일 없는 하루를 살아내는 게 삶에서 가장 큰 행복이라는 것을 우린 깨닫는다.

별일 없는 삶에 대한 간절한 이들이 많아질수록 그들을 다독여줄 이야기꾼들도 생겨난다. 미국의 캐스린 니콜라이 크리에이터는 수많은 청취자들에게 달콤한 잠을 선사해온 인기 팟캐스트 <오늘도 별일 없었어요 Nothing Much Happens>를 2018년부터 진행해왔다.

제목처럼 캐스린은 별일 없는 무탈한 하루를 들려준다. 집안에서 따끈한 차를 마시며 창밖에 내리는 함박눈 구경하기, 여름날 숲속 바위 위에 누워 별이 가득한 밤하늘 바라보기, 약속이 취소된 저녁에 빗소리를 들으며 아껴둔 영화 보기. 별일 없지만 소박한 행복이 깃든 이야기를 듣다보면 하루종일 다양한 외부 자극과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어느덧 안정을 찾고 깊은 잠에 빠진다.

이토록 잔잔한 이야기를 귀로만 들었다면 이제는 눈으로 읽을 차례다. 책 <오늘도 별일 없었어요>는 캐스린이 팟캐스트를 통해 들려줬던 이야기를 글로 담아냈다. 캐스린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작가가 명명한 '별일 없는 동네'에서 보내는 일들인데 이 동네는 무릎에 올라앉은 반려동물의 온기를 느끼며 책을 읽는다거나 하는 정도의 소소한 일들만 일어나는 평화로운 마을이다.

독자가 할 행동은 단 하나. 매일 밤 방의 조도와 온도 등 내 몸에 가장 편안한 환경을 만들어 자리에 누운 뒤 책 목차 속 마음에 드는 제목을 골라 페이지로 이동한다. 그리고 마치 내가 별일 없는 동네에 있는 듯 장면을 찬찬히 그려내면 된다.

자 이제 책을 펴 온전히 집중해본다.

'나는 부엌 식탁에 앉아 커피를 한 잔 더 마시며 빛깔이 차츰 변해가는 하늘과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봤어요.'

'크리스마스의 소란함이 가라앉은 어느 연말, 나는 어느새 제일 좋아하는 상점 진열창 너머의 플래너를 바라보고 있었어요.'

상상한다. 무탈한 일상이다. 잡념은 사라지고 마음이 편해진다. 훈훈한 아침공기, 흙 냄새, 이슬의 차가운 감촉. 모든 것이 소중하고 소중하다. 여유롭고 기분 좋은 것들을 충분히 느끼며 삶을 좀 더 여유롭고 행복하게 살고 싶어진다. 그렇게 위안을 얻는다. 352쪽, 1만7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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