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반도체 ‘어닝 쇼크’

이대현 논설실장
이대현 논설실장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위기 직후 사회부 기자로 증권사 객장을 취재했다. 경제부가 아닌 사회부 기자가 증권사 객장을 찾은 것은 손실을 입은 투자자들이 객장에서 시위를 벌였기 때문이다. 취재를 마치고 나오는데 증권사 지점장이 "여유 자금이 있으면 삼성전자 주식을 사라"고 했다. 당시 삼성전자 주가는 3만 원대까지 떨어진 상태였다. "왜 삼성전자"냐고 물었더니 "대한민국이 망하지 않는 한 삼성전자도 망하지 않을 것"이란 답이 돌아왔다. 기자는 삼성전자 주식을 사지 않았지만 상당수 투자자가 애국(愛國)하는 마음으로 삼성전자 주식을 사 적지 않은 수익을 올렸을 것이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들이 '어닝 쇼크'(실적 충격)를 기록했다. 삼성전자는 작년 4분기 반도체 부문 영업이익이 1년 만에 97% 격감한 2천700억 원으로 추락했다. SK하이닉스는 1조7천12억 원 영업손실을 기록했는데 분기 단위 적자를 낸 것은 2012년 3분기 이후 10년 만이다.

반도체는 수출의 19%를 차지하는 등 한국 경제를 떠받쳐온 산업이다. 반도체 업황 악화로 경제 전체가 휘청이고 있다. 1월 수출이 1년 전보다 16.6% 줄었는데 반도체 수출이 44.5% 급감한 것이 결정타였다. 수출 급감으로 1월 무역수지가 사상 최악인 127억 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반도체는 기업 스스로는 물론 국가 차원에서 뒷받침을 해야만 글로벌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산업이다. 삼성전자가 반도체에서 세계 최고 기업이 된 데엔 국가의 뒷받침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지금 반도체에 대한 국가 지원은 미약하기 그지없다. 대기업 특혜 논란과 기획재정부 반대로 세액공제 규모가 대폭 삭감된 '반쪽짜리' 반도체 특별법이 겨우 나왔다가 윤석열 대통령 주문으로 세액공제를 확대하는 법안이 재상정됐지만 언제 통과될지 미지수다. 반면 대만은 '대만 반도체법'으로 불리는 '산업 혁신 조례 수정안'을 초고속으로 처리했다. 반도체가 고꾸라지면 해당 기업들은 물론 대한민국의 미래도 암울해진다. 1997~98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반도체가 심각한 위기에 빠졌을 때 예외 없이 한국 경제가 큰 위기에 처했다. 반도체 기업들의 어닝 쇼크가 심상(尋常)치 않게 느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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