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는 도시의 외곽에서 식당을 한다. 강을 따라가는 길도 시름없이 무던하거니와 솜씨 좋은 밥맛도 그립고 해서 겸사겸사 찾았다. 마당 한 자락을 덮었던 사프란꽃은 계절에 밀려 온데간데없다. 꽃이야 순리대로 또 피어나겠지만 꽃밭을 뒹굴던 백구는 도둑놈의 손에 잡혀 돌아오지 않은 채 두어 달이 흘러갔다고. 그녀는 날카롭게 잘린 목줄을 보며 헤어나질 못했을 터. 몇 년을 함께 했으니 오죽할까. 공허함을 달래려 어린 고양이 두 마리를 들였다.
식당 문을 열자 노란 고양이와 흰색 고양이가 난리버꾸통이다. 자칭 나도 집사가 아니던가. 딸아이가 여행을 가거나 일이 있을 때면 어쩔 수 없이 돌보아 왔으니. 그 일을 계기로 고양이들의 습성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자부했건만. 어찌 된 일인지 녀석들은 달랐다. 내가 앉은 자리 맞은편에 목을 빼고 앉거나 테이블을 성큼성큼 건너와선 무릎에 안기기까지 한다.
"야 루루! 라떼! 버릇없이 굴지 말랬지. 손님상 근처에 가지 말랬잖아. 이 넘의 짜식들…." 후배의 호통에 동그란 눈을 하고선 슬쩍 고개를 파묻기까지. 반성의 기미도 잠시뿐. 티슈를 한 장씩 뽑아 눈 내린 얼음판처럼 만들어 놓고 일 없다는 듯 사라지는 천진무구함이여. 귀엽기도 하고 영물인가 싶다가도 걱정도 앞서고. 딸애가 키우는 고양이와 이리도 딴판인 성격이 못내 부럽기도 하고.
얼마쯤 지났을까. 주방에서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또 울린다. 녀석들의 사고는 끝날 기미가 없었다. "야 그거 먹지 말라고 했지. 제발 전쟁 좀 끝내자."
꽤 넓은 식당 창가를 장식해 놓은 동양란 잎사귀들을 죄다 갉아 먹고는 도망치다 보기 좋게 걸렸다. 단정하게 단발을 한 난초들을 보고 있자니 나는 어느새 녀석들을 응원하고 있는 게 아닌가. 어디로 달아났을까. 이른 점심이라 손님 없고 사고뭉치들 눈앞에 없으니 부산스럽지 않아 좋긴 하다만. 노릇노릇한 고등어 뼈를 발라내고 삼삼한 갈치에 한술 뜨는 찰나 말하기 무색하게 지진이 난 듯 '쿵' 소리 들리니. 제발 전쟁 좀 끝내자는 주인장의 협상은 물거품인가. 일찌감치 종전에 무관심으로 대응하는 고도의 전략이라니.
식당 마스코트일까. 비록 인형이지만 야생의 냄새를 풍기며 가게를 지키는 호랑이 두 마리가 제법 높은 장식장 위에 있었다. 콧수염을 휘날리며 눈을 부라리고 포효한 형상. 난초잎에 배부르고 난향에 졸음 겹겠다 범의 품인지 천지도 모르고 파고들었을 거다. 꿀잠의 꿈속에서 헤맸을까. 몽롱한 눈으로 제 몸보다 예닐곱 배는 큰 범 두 마리와 나동그라진 거지. 어안이벙벙한 눈으로 난처함과 황당함을 잔뜩 드러내고는 다리를 절뚝이며 천천히 사라진다. 콧수염 부러진 범은 말이 없다.
비록 가짜일지언정 하룻고양이 범 무서운 줄 모르고 까불거리다 된통 당한 꼴. 하긴 당한 것인지 가지고 놀았던 것인지 누가 알랴. 절뚝거리며 돌아가 칼을 갈고서는 범을 물어뜯을지, 외려 범이 부러진 수염값을 청구할지. 인형을 환생시켜 물어볼 수도 없고 명백한 증거도 없는 고양이를 함부로 구속할 수도 없는 노릇이잖은가. 누굴 내쫓느냐는 결국 주인장한테 달렸겠는데…. 그렇다고 주인장을 또 어떻게 믿냐는 거지.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판을 치는 세상 아니던가. 그도 그러한데 이제 하룻고양이는 범 무서운 줄을 알았을까. 여전히 모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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