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들의 주거안정을 위해 도입된 공공임대주택이 지난 3년 동안 범죄의 표적이 되는 동안 정부의 관리감독체계는 작동하지 않았다. 정부가 손을 놓은 사이 2천 가구가 넘는 임차인들이 불안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지만 해결 방법은 보이지 않는다. 이들에게 남은 수단은 부도가 난 건설사를 상대로 희망 없는 소송을 개별적으로 제기하는 방법뿐이다.
◆공공임대주택이 불·탈법 온상으로
공공임대주택을 둘러싼 분양 사기의 전말은 지난 2021년 입주민들이 A건설사를 사기 혐의 등으로 고소하면서 드러났다.
A사는 적은 자본금으로 주택 소유권을 취득한 뒤에 수익을 올리기 위해 임차인을 상대로 온갖 불·탈법을 벌였다. 기습적으로 보증금을 올리거나 일방적으로 부적격 판정을 내려서 분양 전환을 막고 제 3자에게 파는 것이 대표적이다.
A사는 임대주택법에 따라 임대료를 한 번에 5% 이상 올릴 수 없음에도, 일부 임차인들을 상대로 보증금을 더 올렸다. 공실이 생기면 마음대로 임차인을 채우고 불법으로 근저당을 설정했다. 법률상 분양 부적격 사유에 해당하지 않아도 부적격 판정을 내리기도 했다.
달성군청에 따르면 A건설사는 주택도시기금 외에 다른 근저당을 설정할 수 없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31가구에 불법 근저당을 설정한 것으로 확인됐다. A사가 일방적으로 부적격 판정 내린 가구수도 상당하다.
A건설사가 분양 전환을 미끼 삼아 임차인에게 개별적으로 가로챈 금액도 73억원에 이른다. 이들은 잔금을 주면 소유권을 이전하겠다며 피해자들을 속였다. 자금 사정 어려워 부도가 임박했을 때도 신규 임차인 10명을 상대로 임대 보증금 11억 4천만원을 받았다. 보증보험 가입도 약속했으나 거짓말로 드러났다. 입주민에게 빼앗은 돈은 회사 운용비 등으로 사용했다.
◆모든 피해는 임차인 몫
A건설사를 사기 혐의 등으로 고소한 입주민 중 한 명인 오진숙(54) 씨는 "지난해 11월 검찰로부터 'A건설사 대표를 사기 혐의로 기소했다'는 통지문을 받았을 뿐 해결된 건 아무것도 없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오 씨는 "소송 비용 등 1억2천만원을 고스란히 날려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배상을 청구한다 해도 건설사 측이 '배 째라'는 식으로 나오면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2020년 4월쯤 5년의 임대 기간을 채운 입주민 대표 박대규(54) 씨도 분양 전환하기로 계약하고 계약금까지 넣었지만, 아직도 소유권 이전을 받지 못했다. 공공임대주택은 일반 민간주택과 달리 5년 임대 계약 후 임차인의 선택에 따라 정해진 가격으로 분양 전환이 이뤄진다.
박 씨와 같은 피해를 입은 230여 가구는 A건설사에게 소유권 이전을 계약대로 이행하거나, 계약금과 보증금을 반환하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재판 중이던 지난달 23일 A건설사가 최종 부도 처리되면서 상황은 점점 악화하고만 있다.
박 씨는 "주민들과 함께 소유권 이전 소송과 근저당 말소 소송, 분양대금 반환 청구 소송을 진행 중"이라며 "보증보험에 든다고 보증금을 다 돌려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라서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고 호소했다.
보증보험마저 가입하지 못한 가구의 피해는 더욱 심각하다. 2020년 1월에 전세로 입주한 김모(37) 씨는 지난해 1월 기존 전세 계약이 끝난 뒤 '울며 겨자 먹기'로 계약을 연장해 살고 있다.
김 씨는 "건설사가 비슷한 전세 가구가 많으니 한꺼번에 보증보험을 가입해주겠다고 했지만, 차일피일 미루더니 결국 해주지 않았다"며 "가족들에게 손 벌리지 않고 결혼 자금을 마련하려고 10년 동안 타지에서 밤낮없이 일하며 모은 돈이었는데, 부동산 사기 뉴스만 봐도 손이 덜덜 떨리고 최근에는 심리 상담을 받고 있다"고 했다.
주택도시보증공사는 "이미 다른 지역에서 보증 사고가 난 후에 계약을 한 세대는 보증보험이 발급되지 않았을 수 있다"며 "이런 세대가 돈을 돌려받으려면 보증금반환청구 등 소송을 통해 돌려받는 방법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건설사 부도 이후에도 임차인들은 대부분 묵시적 갱신 상태로 해당 아파트에 머물고 있다. 분양을 포기하고 주택도시보증공사로부터 보증금을 돌려받아 나간 가구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분양 전환을 위해 계약금까지 낸 가구나, 건설사로부터는 보증금을 덜 받은 가구는 금전적 피해가 막대하다. 잔금까지 다 완납하고 소유권 이전을 받지 못한 가구도 있었다.

◆아파트 하자에도 유지·보수 안돼
건설사가 부담해야 할 공실 가구의 관리비도 연체되는 바람에 입주민들이 내고 있다. A건설사가 2020년 4월부터 2년 6개월 동안 연체한 관리비만 2억5천만원에 달한다. 심지어 지난해에는 한국전력공사가 아파트 관리비 통장을 압류하는 바람에 입주민 대표가 한전과 협의서를 작성하고 압류를 풀었다. 결국 남은 주민들이 매달 2만원 정도 더 걷어서 공실 가구의 전기요금을 대신 내기로 했다.
아파트에 하자가 생겨도 유지‧보수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지하주차장 바닥은 여기저기 갈라져서 울퉁불퉁했지만, 보수한 흔적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천장에도 투명 플라스틱이 이곳 저곳 덧대어져 있었고 그 아래에 파란 바구니가 놓였다. 비가 올 때마다 천장에서 물이 새자 관리사무소에서 임시방편으로 둔 것이었다.
이 아파트의 관리사무소장 권대득(62) 씨는 "관리실의 운영자금이 부족하니 경비원을 줄일 수밖에 없었고, 그래도 자금이 해결되지 않아 관리실이 시설 보수나 운영을 제대로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이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다. 한 입주민은 "가정불화까지 깊어지고 있다. 피해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이 희망 고문에 그칠까 봐 두렵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달성군청 관계자는 "해당 입주민들의 피해 상황을 잘 알고 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기관과 협력해 알아보고 있다"면서도 "현실적으로 군청이 주도적으로 나서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비슷한 피해 사례 전국에서 발생했는데…
달성군의 공공임대주택과 비슷한 사례는 이미 수년 전부터 전국 각지에서 발생했지만 정부와 지자체는 손을 놓고 있었다. 달성군 공공임대주택 대표 박대규 씨는 2018년 말부터 광양, 세종, 강릉 등 전국에서 비슷한 사고가 일어난 곳들을 찾아 사람들을 모으고 정보를 교류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4곳이 모여 전국5년공공임대주택연합회를 만들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무안, 군산 등 다른 지역도 합류했다. 2020년에는 마침내 공공주택특별법이 개정되기도 했지만 관심은 잠깐이었다.
2020년 국토교통부는 피해를 본 공공임대아파트 소재 지자체와 함께 TF를 구성해 관련 문제를 논의해보겠다고 밝혔으나 현재까지 관련 움직임은 확인되지 않았다. A건설사를 기소한 검찰 관계자는 "보증 사고가 발생했을 때 다른 지역 임차인들에게 통지가 되지 않는 상황을 확인했다"며 "주택도시보증공사 담당 부서에 문제 있다는 의견 내는 것을 검토해보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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