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내가 읽은 책] 그때 문장들은 따라가고 싶은 등불이었다

시 읽는 청소부(신상조/ 시와 반시/ 2022)

다섯 달동안 7킬로그램이 줄었다고 한다. 이 책을 쓴 작가의 몸무게에 관한 말이지만 그녀의 다이어트를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읽고 쓰기와 강의와 청소부 일과 살림이라는 몇 가지 일을 한 사람이 해내는 동안 살이 저절로 깎여나간 것이다. 수십 년간 몸에 밴 읽고 쓰기와, 그 연장선에서 강의도 놓아 버릴 수 없는 작가가 추가 수입을 위해 고육지책으로 선택한 직업이 백화점 야간 미화원이었다. 하루 8시간 6개월간 지속하였다.

이 책은 그 당시 작가의 마음 앞뒤가 오롯이 기록되어 있다. 청결한 백화점에 숨겨져 있는 미화원의 애환과 피로가 진득한 1부, 화가와 조각가와 연극 배우와 시인들과의 정서적 연대를 인터뷰 형식으로 풀어낸 2부, 최근 시단에서 다루어볼 만한 주제를 평론가의 시각에서 펼친 3부로 구성된 이 책은 문학 평론가 신상조의 두 번째 저서이다. 2011년 중앙일보 평론 신인상 당선 후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작가의 평론집으로 '붉은 화행'이 있다.

'시 읽는 청소부'에서 작가는 자신이 미화원인 척하는 '고급 속물'이 아닌지 돌아보기도 하고, 김언희 시인의 강연을 들은 7년 전 기억을 아름다운 문장으로 떠올리기도 한다. "우리들은 부끄럽고도 먹먹했는데, 그것은 황홀함과 고통스러움이 묘하게 뒤범벅된 감정이었다"(89쪽)는 것. 또한 "우리는 글쓰기의 재료를 삶으로부터 빌려오지만, 실상 삶으로부터 최대한 멀리 도망하기 위해 글쓰기를 한다"(216쪽)는 냉철한 직시도 있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다시 보는 표지, 짙은 파랑 아래 갈색이 놓여 있다. 건조한 사막 같은 일상에서 읽고 쓰기에 대한 끝없는 갈망과 시도가 낙타 발자국처럼 이어지면 저토록 파란 하늘도 만져볼 수 있을까. 어쩌면 사막 끝 뜻밖의 바다일까. 삶으로부터 최대한 멀리 도망가 닿을 바다, 온전한 내면을 유지한 채 맘껏 휘저을 수 있는 깊고 넓은 문향의 바다에 닿기 위해 작가는 오랫동안 사막을 걸어왔을 테니.

미화원 일을 하며 자본의 극심한 불균형과 고령화 사회의 심각성과 비정규직 노동자들 간의 세대 갈등 같은 담론을 떠올리기도 한 작가는 "교양은 분명 후천적이다. 감정 역시 습관적인 면이 있다. 교양과 감정을 다듬고 키우기에 문학만한 예술도 드물다"(60쪽)고 선언한다. 이는 등불 같은 문장들에 대한 기억일 것이다. 이 책의 돌올한 문장들도 늘 어둡다고 엄살인 나의 읽고 쓰기에 한동안 불빛이 되어줄 것이다.

김남이 학이사독서아카데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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